가상현실(VR)이 촉발한 기술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VR은 ‘차세대 모바일’로 불린다. 노트북, 스마트폰처럼 누구나 하나씩 지니고 살게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삼성과 LG엔 스마트폰을 대체할 차세대 먹거리다. 이 먹거리를 차지하기 위해선 한발 앞선 기술을 보유해야 한다.

제대로 된 VR 디스플레이를 생산하려면 현존하는 최고 화질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보다 세 배 이상 좋은 화질을 구현해야 한다. 초고난도 기술이다. 하지만 VR 필요성이 커지는 만큼 기술 개발 속도도 빨라질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3분만 봐도 머리 아픈 VR은 이제 잊어라"…삼성·LG, VR 전용 디스플레이 개발 경쟁
VR 시장 5년 후 7배 성장

VR의 쓰임새는 게임 교육 등 무궁무진하다. 시장 전망도 밝다. 올해 100억달러 정도인 VR시장(소프트웨어+하드웨어)은 5년 내 7배 이상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 구글, 페이스북 등 굴지의 정보기술(IT) 업체들이 입을 모아 VR을 미래 먹거리로 내세우는 이유다.

하지만 화질이 걸림돌이다. 지금 시중에 나온 VR 기기는 3분만 봐도 머리가 아프다. 제대로 VR을 구현하려면 스마트폰보다 훨씬 화질이 좋아야 한다. 20㎝도 안 되는 디스플레이로 사람의 시야 전체를 덮을 수 있는 화면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어지럼을 없애려면 초고화질(UHD)급 OLED (약 500ppi)보다 화질이 세 배 이상 좋아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디스플레이의 화면 처리 속도도 빨라져야 한다. 화면에서 사물이 움직이면 잔상이 남는다. 속도를 빠르게 해 잔상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VR은 눈 바로 앞에 화면이 펼쳐지기 때문에 조금만 잔상이 남아도 눈에 거슬리고 어지럼증이 생긴다. 이를 개선하려면 현재 최고급 스마트폰보다 속도가 두 배는 빨라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결국 VR의 화질과 속도를 얼마나 높이고 빠르게 하느냐에 따라 VR시장 쟁탈전의 승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삼성, LG “VR 전용 디스플레이 투자”

2000년대 중반만 해도 OLED 양산은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었다. 액정표시장치(LCD)에 비해 반응 속도가 빠르고 화질도 좋았지만 워낙 제조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이 같은 고정관념을 깼다. 더 얇고 선명한 스마트폰을 생산하기 위해 삼성전자는 삼성디스플레이에 OLED 개발을 독려했다. 그리고 2010년 OLED 패널을 적용한 ‘갤럭시S’를 내놨다. 당시 업계에선 ‘스마트폰이 OLED 개발을 5년 이상 앞당겼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런 경험이 있는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VR 개발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미 관련 기술을 확보한 것은 물론 전용라인 투자도 고민하고 있다. 삼성은 스마트폰용과 마찬가지로 유리나 플라스틱 기판을 사용하되 회로를 더욱 정밀하게 그려 화질을 높이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디스플레이는 삼성전자, 소니 등 VR 업체들로부터 더 좋은 화질의 OLED를 납품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며 “현재 장비, 부품업체와 함께 연구 중이며 추가 투자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LG는 기판을 기존 플라스틱, 유리에서 실리콘 웨이퍼로 바꾸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실리콘 웨이퍼는 반도체의 원재료로 쓰인다. 플라스틱이나 유리보다 값은 비싸지만 더 정밀한 화질을 구현할 수 있다. LG디스플레이는 경북 구미에 건설하고 있는 OLED 신규 공장에 실리콘 웨이퍼를 적용한 VR 전용 라인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5G 통신망 상용화도 필수

디스플레이 외에도 VR 대중화를 위해 넘어야 할 산은 여럿 있다. 엄청난 화질의 VR 콘텐츠를 인터넷으로 주고받기 위해선 현재 4세대(4G)보다 1000배 이상 빠른 5G 통신망이 상용화돼야 한다. 삼성, LG 등이 내놓긴 했지만 VR 영상을 찍는 전용 카메라 기술도 아직 부족하다.

하나같이 쉽지 않은 기술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스마트폰 때와 마찬가지로 VR이 각종 기술을 ‘퀀텀 점프’시킬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업계 고위관계자는 “필요가 있으면 관련 기술은 그에 맞게 진화해왔다”며 “VR이 디스플레이, 통신 등 관련 기술의 발전을 더욱 빠르게 촉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