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종이로 만든 단색화…정창섭 화백 유작전
한지 원료인 닥을 활용해 단색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정창섭 화백(1927~2011) 개인전이 3월27일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린다.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정 화백은 1953년 제2회 국전에서 서양화 ‘낙조’로 특선을 차지하며 화단에 데뷔했다. 1960년대 서양미술 사조였던 앵포르멜 회화를 실험한 그는 유화로 번짐 효과를 표현해 수묵화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는 기법을 탐구했다. 1970년 중반부터 한지를 이용한 작업으로 방향을 바꿨고, 1980년대 들어 ‘닥’ 시리즈를 처음 내놓아 주목받았다.

‘그리지 않은 단색화’ 작가로 잘 알려진 정 화백의 이번 전시에서는 1960~1990년대 대표작 30여점을 만날 수 있다. 다양한 색감의 희거나 푸른, 또는 검정과 갈색 바탕에 닥의 질감이 사선 혹은 직선, 주름으로 펼쳐진 작품들이다.

1980년대 제작한 ‘닥’ 시리즈와 1990년대 ‘묵고’ 시리즈(사진)에서는 명상적이고 철학적인 분위기가 강하게 배어 나온다. 공간이 조용하면 관람객이 움직이는 발걸음 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사색적인 요소도 짙게 깔려 있다. 전시 공간의 조명과 어우러지며 서로 ‘만났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자연스럽게 생명력을 뿜어낸다.

닥을 이용한 독특한 제작 기법 역시 관람객의 시선을 끈다. 정 화백은 생전에 ‘닥의 화가’로 불릴 만큼 한지 작업에 열중했다. 물에 불려 반죽을 만들고, 이것을 캔버스에 올린 뒤 손으로 펴고 두드린다. 이를 건조하면 닥 고유의 선과 주름이 나타나고, 원래 갖고 있던 색이 드러난다. 작업하는 과정에 작가의 손이 들어갔으나 시간을 두고 기다림으로써 결과적으로 특유의 형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손가락 틈새로 닥의 섬유질이 새어 나오기도 한다. 이 상태에서 건조하면 닥 고유의 선과 주름이 캔버스에 형성된다.

정 화백은 “우리 민족적 감성의 상징인 닥을 통해 나의 실존과 닥의 물성이 하나로 동화됨으로써 내 그림이 나와 내가 속한 우리 사회와 시대를 정직하게 반영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회고한 바 있다. (02)735-8449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