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 주도의 산업혁신기구가 추진하고 있는 일본 전자산업 재편이 물 건너 갈 가능성이 커졌다. 샤프가 대만 훙하이그룹과 인수합병(M&A) 협상을 우선적으로 진행하기로 한 데 이어 도시바도 백색가전 사업부문의 해외 매각을 저울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 유출 방지와 사업 재편을 통한 경쟁력 확보라는 일본 정부의 ‘명분’이 기업과 주거래은행의 ‘실리’ 앞에서 힘을 잃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5일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궈타이밍 훙하이그룹 회장은 이날 오사카 샤프 본사를 방문해 우선 협상이 가능한 권리를 얻는 서명을 했다고 기자들에게 밝혔다. 궈 회장은 이달 29일 최종 계약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훙하이는 샤프 전 사업부문을 7000억엔(약 7조원)에 인수하고, 임직원 고용 유지와 주거래은행의 추가 부담이 없을 것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해 이사진과 주거래은행의 마음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샤프는 중소형 액정표시장치(LCD)사업의 지속 여부와 임직원 고용 유지, 해외 기술 유출 방지 등 조건의 이행 가능성을 점검하며 훙하이와 최종 협상에 나설 계획이다.

도시바도 지난 4일 열린 기업설명회(IR)에서 백색가전 구조조정과 관련해 “해외 업체로의 매각도 대안”이라며 “늦어도 2월 말까지 방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산업혁신기구는 샤프의 중소형 LCD사업을 분리해 자신이 최대주주인 재팬디스플레이와 통합하고, 도시바 백색가전을 샤프와 합쳐 일본 전자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구상이었다.

요미우리신문은 산업혁신기구가 새로운 인수 조건을 제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일본 정부 내에서는 LCD 기술 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고 전했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