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이 6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타결 대응 방안에 대해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이 6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타결 대응 방안에 대해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일 전격 타결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 실기(失機)에 대한 책임을 둘러싸고 전·현 정부가 뚜렷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이런 차이는 비단 실기의 원인에 국한되지 않고 TPP 이해득실과 후속 참여 여부에서도 이어져 향후 대책 마련을 둘러싸고 상당한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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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소극적 vs 우선순위 밀렸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이 초기 TPP 협상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2008년 미국이 TPP 참여를 선언할 당시 이미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타결한 데다 중국과 FTA 협상을 진행하던 상황이어서 여기에 집중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이명박 정부가 했다”고 설명했다. 최 부총리는 “당시 12개 국가가 협상을 진전시켜 놓은 상황이어서 우리가 (중간에) 들어가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우선순위를 한·중 FTA에 두면서 TPP 참여 초기부터 기회를 놓쳤다는 해석을 뒷받침하는 발언이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FTA에 대해 지나치게 자신하면서 좀 더 큰 차원의 환태평양 경제동맹에서는 낙오자가 될 처지에 놓였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 협상에 참여했던 통상 관료들은 다른 주장을 펴고 있다. TPP 논의 당시 통상 분야를 맡았던 한 고위 관료는 “미국이 한국의 참여 자체에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관료는 “미국은 TPP를 사실상 일본과의 FTA라고 생각했기에 이미 한국과 FTA를 맺은 상황에서 한국의 가입에 소극적이었다”며 “한국 입장에서도 TPP 국가 중 일본과 멕시코를 제외한 10개국과 이미 FTA를 체결했거나 진행 중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TPP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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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르면 손해 vs 조속 참여해야

국내 기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누적 원산지 규정에 대한 견해도 달랐다. 누적 원산지 규정이란 TPP를 맺은 국가 내에서 원재료를 조달할 경우 모두 국산 재료로 간주(역내산으로 원산지를 인정)해 특혜관세 혜택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TPP 참여 여부 검토 작업에 참여했던 한 실무 관계자는 “TPP의 누적 원산지 규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될지 아직 공개된 바 없다”며 “국내 기업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과도하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 정부 관료들은 누적 원산지 규정이 수출 기업에 미칠 악영향을 걱정하고 있다. 최 부총리도 이날 국정감사에서 “FTA 측면에서는 우리가 일본보다 우위였지만 일본이 TPP에 가입함으로써 누적 원산지와 관련해 일본이 유리한 측면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조속히 참여를 추진해야 하느냐를 놓고도 입장차가 뚜렷했다. 최 부총리는 국감에서 “어떤 형태로든 참여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겠다”며 “공청회 등 절차를 거쳐 TPP 참여 여부와 시점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통상당국도 TPP 참여에 대한 실익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조속한 가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이명박 정부 시절 통상관료들은 조급해하면 잃는 게 더 많을 것이라는 견해를 고수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마지막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지금 와서 TPP에 참여하겠다고 서두르면 우리의 의도가 노출되면서 사실상 협상을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무작정 서두를 것이 아니라 미·중·일의 역학관계, 원산지 규정의 실제 내용,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을 면밀히 따져봐야 할 것”이라며 “뒤늦게 조급한 모습을 보일 경우 협상 과정에서 불리한 추가적인 조건을 떠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