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구, 복지사각지대, '김노인' 성공적 자활 도와…
▲ 사진= 동대문구 제공(최형호 기자).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인정받아 작가로 활동하며 한땐 잘나갔지. 철없던 시절 가족도 외면하고 방탕하게 살다보니 어느새 가족들은 모두 떠나버리고 가난과 늙고 병든 몸뚱이만 남았지 뭐야. 지난날은 돌아보면 후회 뿐, 이런 내가 싫어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지만 죽는 것도 마음대로 안 되더라고."



동대문구(구청장 유덕열) 회기동 희망복지위원회가 동 주민센터가 복지사각지대에 있던 노인을 발굴, 지원해 1년 동안 성공적인 자활을 도운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25일 구에 따르면 이 노인은 만화가였던 자신의 경력을 살려, 현재 관내 홀몸어르신을 대상으로 '화조 따라 그리기 교실'을 운영하는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3월 회기동 희망복지위원회 소속 주민 2명은 기초생활수급대상자인 김희준씨를 방문했다가 우연히 집주인으로부터 3층에 거주하고 있는 김영진 노인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김노인은 소득이 없고 가족과도 단절됐으나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해 끼니 해결은 물론 월세도 1년 가까이 밀려 있었다.



김노인은 젊은 시절 미술 재능을 인정받았으며, 유명잡지사에 보낸 공모작이 당선돼 작가로도 수십년간 활동했다. 이후 생계를 돌보지 않고 방탕한 생활 끝에 재산을 탕진해 가족들도 모두 등을 돌리자, 자개장그림을 그리거나 방수 건축일 등을 전전했다.



김노인을 방문했던 한 희망복지위원은 "어르신이 거주하는 집은 2평 정도의 작은 방으로, 밥통과 얇은 이불 그리고 옷가지가 다였다"면서 "별거 후 자연스럽게 자녀들과도 관계가 단절됐고, 아내와 자식들에게 연락할 염치가 없다며 피하다보니 다시 연락할 방법도 사라진 같다"고 전했다.



이에 회기동 주민센터에서는 곧바로 '따뜻한겨울보내기' 후원금으로 생계비 40만원을 지원했고, 서울형기초보장수급자로 결정될 수 있도록 신청을 도와 월 20만원씩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1년이 넘는 '김노인 자활 장기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동 주민센터와 희망복지위원회는 김노인에게 지속적인 지원과 방문을 통해 1년 동안 김노인의 생계를 지원했다.



9월에는 회기동 희망복지위원회에서 '저소득 주민 월세 지원금 마련을 위한 사랑나눔 자선바자회'를 개최하면서, 김노인에게 바자회 체험프로그램으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캐리커처를 부탁했다.



김노인의 섬세한 캐리커처와 풍속화 등은 주민들의 뜨거운 반응 속에 총 37만원의 수익을 내기도 했다.



또한 바자회가 끝난 후 위원들은 회의를 거쳐, 전문가 유화물감 및 100만원 상당의 최신 노트북을 선물하는 등 김노인이 화가로서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왔다.



11월에는 '동대문구 복지공동체 동 희망복지 우수사례 발표회'에서 '어느 만화가 노인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김노인의 자활 사례를 시나리오로 작성, 발표했다.



연극 무대를 위해 김노인은 일주일 이상 8자 병풍 크기의 배경을 직접 그렸고, 신강수 회기동 희망복지위원장을 비롯한 희망복지위원들은 연극에 직접 참여했다.



김노인의 생활이 서서히 안정되고 그림실력이 입소문을 타면서 올해 1월부터는 시민청 내 서울책방을 운영하는 김의수(동대문구 협동조합, 한우리문고사장)희망복지위원의 권유로 이곳에서 매월 1회 캐리커처 그려주기 행사를 시작했다.



또한 서초국립중앙도서실 개관식과 4월에 열린 '자치구 환경 세계총회'에도 캐리커처 강사로 초빙돼 활동하면서 김노인은 스스로의 힘으로 월세를 낼 수 있을 정도로 생활력을 키우게 됐다.



특히 지난 4월에는 회기동 희망복지위원회의 특화사업인 '화조 따라 그리기 교실'도 시작했다. 강사로 나선 김노인은 2시간 동안 또래 할아버지·할머니들에게 화조 등 동양화 그리는 법을 가르치고 직접 시범도 보인다.



수강생으로 참석한 박노인은 중픙으로 거동이 불편하지만 매주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 "우리 수준에 맞춰 쉽게 설명해줘서, 따라 그리다보면 어느새 작품이 완성되니 보람을 느낀다"고 강의 소감을 밝혔다.



74세의 나이에 현역 화가처럼 다시 왕성한 활동을 시작한 김노인은 "회기동 주민센터 직원들과 희망복지위원회 덕분에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만큼 매사에 감사한 마음으로 주변과 나누며 살고 있다"며 "요즘은 다양한 소재의 그림을 그려 덕수궁 앞에서 팔고 싶은 화가로서의 욕심도 생겼다"며 작은 꿈을 전했다.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은 "동 주민센터와 희망복지위원회간 유기적인 네트워크와 구의 체계적인 지원제도가 만나 복지사각지대였던 김노인을 발굴하고 작은 기적을 만들었다"면서 "제도적 생계지원을 넘어 구와 주민들이 물심양면으로 어르신의 홀로서기를 도운 모범적인 자활 사례인 만큼 이를 교훈 삼아 앞으로 더 많은 김노인을 발굴, 지원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최형호 한경닷컴 정책뉴스팀 기자 guhj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