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배임죄, 언젠가 위헌결정 내려질 규정
다른 나라 기업인과는 달리 한국 기업인들을 언제든 옭아맬 수 있는 또 하나의 리스크가 배임죄다. 지난 2일 헌법재판소는 형법상 업무상 배임죄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가법)상의 배임죄 규정은 위헌이 아니라는 결정을 했다.

배임죄는 법규 자체가 문제다. 우선 윤리문제에 속하는 배신을 형사범으로 의율(법규를 구체적인 사건에 적용하는 것)하는 것이 문제다. 배임죄의 본질은 ‘배신’이라는 것이 국내 형법학자 대다수의 견해다. 윤리는 개인 간에 민사로 처리해야 할 문제다. 이를 형법에 규정해 국가가 형벌로써 다스린다면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다. 헌재는 “대법원이 경영상 판단에 대한 법리를 수용해 배임죄의 고의성 판단을 할 때 엄격한 해석기준을 적용하고 있어 과잉입법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시했지만, 법원이 해석을 잘하고 있으니 법률은 잘못되지 않았다는 주장은 동문서답이다. 법률이 잘못됐다는 지적에, 해석만 잘하면 된다는 것은 지극히 비법률적이다.

배임죄의 구성요건은 고의 등 일반적인 범죄 구성요건을 제외하면 ‘임무위배’가 전부다. 타인의 사무를 지나치게 잘 처리해도, 조금 부족하게 처리해도, 심지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임무위배가 될 수 있다. 이는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반한다. 죄형법정주의란 어떤 행위가 범죄인가 아닌가, 그 범죄에 대해 어떤 형벌을 가할 것인가는 명확하게 법률로 정해져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것은 근대 자유주의 형법의 기본원칙이다. 형벌권의 자의적 행사를 방지하는 것은 인권보장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특경가법 제3조는 재산상 이득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일 때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형에,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일 때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이것은 금액이 크면 엄청난 범죄이고 금액이 적으면 조그만 범죄라는 것과 같다. 양심을 속이는 것은 마찬가지인데도 금액에 따라 차등해 처벌한다면, 조그만 범죄는 저질러도 크게 문제될 것 없다는 인식을 주게 된다. 큰 사업을 하는 사람은 큰 벌을 받을 가능성이 크므로, 배임죄를 피하려면 조그만 일만 해야 한다. 범죄로 인한 이득액을 기준으로 법정형을 가중하는 것은 합리적인 입법방식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이득액 5억원과 4억9100만원은 액수의 차이가 거의 없지만 법정형에서는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살인죄도 그 처벌은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다. 배임행위가 살인에 갈음할 정도인지도 의문이다.

배임죄의 해석과 적용도 문제다. 기업인에게 적용할 특별배임죄를 상법에 규정하고 있지만 형법 제356조의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한다. 이것은 법률적용 시 특별법우선의 원칙 위반이다. 또 법률에는 분명 이익의 취득 또는 손해의 발생이 있어야 한다고 돼 있다. 재판실무에서는 손해발생의 위험만 초래했더라도 처벌한다.

이득액이나 손해액이 명확하지 않아 지은 죄보다 더한 처벌도, 덜한 처벌도 가능하다. 한 사람이 하룻밤에 하나의 창고에서 여러 번 물건을 훔쳤더라도 하나의 절도죄가 성립하는 경우처럼 하나의 범죄, 즉 포괄일죄가 성립할 수 있다. 반대로 순차적으로 여러 개의 범죄를 저지른 것, 즉 경합범으로 볼 수도 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형벌에 큰 차이가 난다. 범죄의 가액이 범죄구성요건이 되는데도 현실적으로는 이것을 정확하게 측정하기도 증명하기도 어려운데, 불분명한 것을 기준으로 차등 처벌하는 것은 처벌의 형벌 체계상 불균형을 초래하고 책임과 형벌 사이 비례원칙에 위배됨이 분명하다. 언젠가는 위헌결정을 받아야 할 규정이지만, 그때까지 기업인이 직면하는 위험은 매우 크다. 배임죄는 ‘전면 리콜’이 필요하다.

최준선 <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jsskku@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