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순수 자연·인간 존엄성 상징"
지난 10일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만난 설치미술가 양혜규 씨(44·사진)는 예민해 보였다. 오는 5월10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코끼리를 쏘다 象(상) 코끼리를 생각하다’가 관객 앞에 온전한 모습으로 비칠지에 대한 우려와 불안 때문인 것 같았다.

“관객들이 전시실 위층에 설치된 블라인드 작품 ‘성채’의 비디오 영상을 꼭 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리움 측에 몇 번이나 당부했다.

서울과 독일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양씨가 국내 세 번째 개인전을 연다. 5년 만에 여는 국내 전시다. 서울예고,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199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유학을 떠난 그는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2009), 카셀 도쿠멘타(2012), 스위스 아트바젤(2014) 등 세계 유수 아트페어에 초청받은 스타 작가다. 이번 전시에선 2001년 이후 대표작과 신작을 포함한 조각, 설치, 영상, 콜라주 35점을 전시한다.

전시 제목은 조지 오웰의 수필 ‘코끼리를 쏘다’와 로맹가리의 소설 ‘하늘의 뿌리’에서 따 왔다. 양씨는 “코끼리는 인간에 의해 파괴되는 순수한 자연을 의미하는 동시에 연약한 인간의 존엄성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인공 짚으로 엮어낸 ‘중간 유형’(2015)은 국내외에서 첫선을 보이는 설치작품이다. 고대 마야의 피라미드 엘 카스티요, 인도네시아의 불교 유적 보로부두르, 러시아의 이슬람 사원 라라 툴판을 참조한 구조물 3점과 인체를 형상화한 개별 조각 6점이 전시장에 대각선으로 놓여 있다.

양씨의 대표작도 관람할 수 있다. 유럽 미술계에 반향을 일으킨 초기작 ‘창고 피스’(2004), 서울 사람들의 생활상을 해학적으로 형상화한 ‘서울 근성’(2010), 사회 인사들이 사용한 의자를 대여해 마련한 작품 ‘VIP 학생회’, 186개의 블라인드와 무빙라이트 향 분사기 등으로 제작한 ‘성채’(2011) 등이 전시장에 늘어서 있다.

이번 전시는 리움이 서도호 전(展)에 이어 두 번째로 마련한 생존 작가의 개인전이다. 세미 회고전이란 전시 성격이 발목을 잡은 걸까. 한정된 공간 안에 작품을 욱여넣은 모습이 아쉽다. 학생 4000원, 성인 7000원. (02)2014-6901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