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전소 북적 > 스위스 제네바의 한 환전소에 15일(현지시간)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스위스 중앙은행이 이날 유로화에 대한 스위스프랑의 가치 상승을 막기 위해 도입했던 최저환율제를 폐지하자 글로벌 외환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제네바AFP연합뉴스
< 환전소 북적 > 스위스 제네바의 한 환전소에 15일(현지시간)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스위스 중앙은행이 이날 유로화에 대한 스위스프랑의 가치 상승을 막기 위해 도입했던 최저환율제를 폐지하자 글로벌 외환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제네바AFP연합뉴스
‘스위스 태풍’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강타했다. 안정적인 통화 정책으로 신뢰받던 스위스 중앙은행이 15일(현지시간) 자국 통화인 스위스프랑의 환율 하한선을 전격 폐지하면서 5조3000억달러(약 5710조원·하루 거래 규모)의 글로벌 외환시장이 요동쳤다. 스위스프랑 가치는 폭등하고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인 금과 주요 국채에 대거 쏠렸다.

전문가들은 “국제유가 급락과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로 가뜩이나 불안한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더욱 커졌다”고 평가했다. 오는 22일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회의를 앞두고 유로화 가치 하락 폭은 예상보다 가팔라질 것으로 전망됐다.

○커지는 비용 부담에 통화 강세 용인

스위스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재정 위기가 높아지던 2011년 9월 스위스프랑 가치가 급등할 것에 대비해 최저환율제를 도입했다. 스위스프랑 가치를 유로당 1.2스위스프랑으로 설정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수시로 통화 당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했다. 일종의 고정환율제였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스위스프랑의 강세가 심해졌고 스위스 중앙은행은 통화 강세를 억누르기 위해 지속적으로 유로화를 사들였다. 이러다 보니 스위스의 외환보유액은 빠르게 늘었다. 최저환율제 선택 직전 2000억스위스프랑(약 246조5400억원) 정도였던 외환보유액은 작년에는 5000억스위스프랑까지 늘었다. 스위스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웃도는 규모로 사상 최대다.

이 상황에서 22일 ECB가 국채 매입 등 전면적인 양적 완화를 시행하면 유로화 가치가 더 떨어진다. 스위스 중앙은행으로선 더 많은 유로화를 사들여야만 환율을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스위스 중앙은행이 자국 통화 강세를 용인하고 환율 개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소시에테제네랄은 “유로화 약세와 자국 통화 강세를 막아내는 데 필요한 비용 부담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유로화 가치 하락 폭 커져

로이터통신이 ‘프랑코겟돈(‘스위스프랑+아마겟돈’·스위스프랑의 지각 변동)’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예상치 못한 변수였기 때문에 스위스 중앙은행의 발표 직후 유로당 1.2스위스프랑 수준이던 스위스프랑 가치는 0.85스위스프랑까지 급등했다.

통화 가치 급등에 따른 스위스 기업의 수익성 악화 우려로 이날 장중 스위스 주가지수는 14% 떨어졌다. 유로존 경기 침체 우려에 스위스의 최저환율제 폐지까지 더해지면서 유로화 가치는 급락했다. 이날 전 거래일 대비 1.9% 하락해 장중 한때 1.15달러까지 떨어져 11년 만에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스위스 중앙은행의 결정으로 시장에서 유로화를 대거 매수해오던 큰 수요가 사라진 셈”이라며 “ECB의 통화정책회의와 맞물려 예상보다 유로화 가치 하락세는 가팔라지고 미국 달러화 가치 상승세도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헝가리 등 스위스프랑으로 표시된 채무를 갖고 있는 국가들은 직격탄을 맞게 됐다. 스위스프랑 가치가 치솟으면 그만큼 채무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국채와 금 등 안전자산에 대한 쏠림은 심화됐다. 이날 독일 등 주요 선진국 국채 금리는 마이너스 폭을 확대했고, 금값은 2.5% 올랐다.

김용준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유로화 가치의 급격한 하락에 따라 유로존 외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자국 통화 가치 하락에 나설 수 있어 글로벌 외환시장의 변동성은 더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ECB의 전면적인 양적 완화 시행에 맞춰 덴마크와 스웨덴 등 일부 유럽 국가 중앙은행들이 유로화에 대한 자국 통화의 가치 절상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