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이 생산량 감축 합의에 실패했다. OPEC 12개 회원국은 27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석유장관회의에서 하루 평균 3000만배럴인 산유량 한도를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OPEC 감산 합의 불발…유가전쟁 불붙나
이날 알리 알 오마이르 쿠웨이트 석유장관은 5시간에 걸친 회의를 마친 뒤 “OPEC의 생산량 한도에는 변화가 없다”고 발표했다. 수할리 알마즈루이 아랍에미리트(UAE) 에너지부 장관 역시 “현재 석유시장은 과잉 공급 상태이지만, 지금의 초과 공급이 OPEC 탓은 아니다”고 말했다.

감산 합의에 실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날 런던석유거래소(ICE)에서 북해산 브렌트유 1개월물 가격은 장중 한때 배럴당 74.36달러까지 급락했다. 브렌트유 가격이 75달러 아래로 떨어진 건 2010년 9월 이후 4년2개월 만에 처음이다.

OPEC은 3년 전 회원국들의 전체 산유량을 하루 평균 3000만배럴로 정했다. 그러나 지난 10월 하루 평균 산유량은 3060만배럴로 이를 넘어섰다.

국제 원유시장을 주도해온 OPEC 회원국들은 셰일오일 개발로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재정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산유량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여기엔 유가 폭락이 산유국보다 고비용으로 원유를 생산하는 미국 셰일 개발업체에 더 큰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다. 저유가로 경제 위기를 맞고 있는 러시아도 미국 셰일오일 개발의 손익분기점인 배럴당 60달러까지는 버텨보려는 모습이다. 러시아 국영 석유기업 로스네프트의 이고르 세친 회장은 “러시아는 유가가 배럴당 60달러로 떨어지더라도 감산을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저유가는 높은 비용으로 생산하고 있는 나라들에 더 큰 손해를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원유시장조사업체 오일프라이스인포메이션서비스의 설립자 톰 클로자는 “내년 상반기까지 제대로 된 감산 결정이 나오지 않으면 유가는 배럴당 35달러까지 폭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국제 유가가 올 6월 이후 약 30% 하락하면서 금융권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영국 바클레이즈은행과 미국 웰스파고가 유가 폭락으로 8억5000만달러(약 9366억원)의 대출 채권을 처분하지 못해 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두 은행은 올초 미 정유회사 사빈오일앤드가스와 포레스트오일의 인수합병과 관련해 긴급 단기융자(브리지론)를 제공했다.

UBS와 골드만삭스 역시 사모펀드 아폴로의 에너지기업 익스프레스에너지서비스 인수 때 각각 대출을 해줬지만 이들도 대출 채권을 정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FT는 “바클레이즈와 웰스파고가 브리지론을 중장기 대출(신디케이트론)로 변경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 빌려준 돈의 60%밖에 회수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