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문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왼쪽)이 금속 가공 중에 발생하는 티타늄 스크랩에서 불순물을 걸러내 다시 순수한 티타늄 잉곳을 만드는 설비를 둘러보고 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제공
문병문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왼쪽)이 금속 가공 중에 발생하는 티타늄 스크랩에서 불순물을 걸러내 다시 순수한 티타늄 잉곳을 만드는 설비를 둘러보고 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제공
티타늄은 비싼 금속이다. 희소 금속이라서가 아니다. 티타늄은 지구 상에서 아홉 번째로 흔한 원소다. 그럼에도 2010년 ㎏당 2달러였던 수입 단가가 현재 6달러 선까지 오른 것은 정제·처리·가공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쓰임새는 늘어나는 데 생산 비용이 높다 보니 자연스레 가격이 올라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속 가공 중에 발생하는 티타늄 조각을 재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국내에서 개발됐다. 문병문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이 개발한 ‘티타늄 금속 재생 기술’이다.

생기원 인천지역본부에서 만난 문 연구원은 “전자기유도장치와 수소플라즈마를 이용해 불순물을 없애는 기술”이라며 “티타늄 잉곳(금속을 녹인 뒤 주형에 넣어 굳힌 것)을 깎아 제품화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티타늄 스크랩(가루)을 다시 잉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크랩서 산소·불순물 걸러내

금속을 가공할 때 나오는 스크랩은 귀중한 자원이다. 하지만 철이나 알루미늄과는 달리 티타늄 스크랩은 국내에서 재활용되지 못했다.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 연구원은 “스크랩을 잉곳으로 만들면 가격을 10배 더 비싸게 받을 수 있지만 재활용 기술이 없어 싼값에 일본에 넘겨야 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외로 유출된 티타늄 스크랩은 해마다 1500~2000t에 달한다. 티타늄 잉곳 연간 수입량 4000t의 40~50%에 해당하는 양이다.

광물에서 티타늄을 추출해 잉곳을 만드는 것도 매우 까다롭지만 스크랩에서 잉곳을 만드는 것은 더 어렵다. 티타늄 스크랩은 금속 가공 과정에서 가스와 불순물에 오염되기 때문이다. 특히 기계 가공 중에 발생하는 열화 현상으로 인해 스크랩 내 산소 함량이 크게 늘어나는데, 이는 티타늄의 우수한 물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그는 “순수한 티타늄을 만들기 위해선 산소와 각종 불순물을 제거해야 하는데, 티타늄은 산소와 매우 강하게 결합하려는 성질이 있어 이를 떼어내는 게 무척이나 어렵다”고 말했다. 2011년부터 문 연구원팀이 총력을 기울여 개발한 기술은 수소를 플라즈마 상태로 만드는 방법을 썼다. 수소 이온이 산소와 반응해 티타늄에서 산소를 떼어낼 수 있다. 각종 불순물 역시 플라즈마 방식으로 대부분 걸러낼 수 있다.

○티타늄 시장 3조5000억원

티타늄은 ‘꿈의 금속’으로 불린다. 티타늄처럼 가벼우면서도 강도가 뛰어난 금속이 없기 때문이다. 무게는 알루미늄과 철의 중간이지만 강도는 알루미늄의 6배, 철의 2배에 이른다. 다른 금속에 소량만 넣어도 훨씬 더 가벼우면서 튼튼한 합금이 만들어진다. 내부식성도 뛰어나다. 때문에 우주·항공 재료부터 안경테, 골프채, 테니스 라켓, 자전거, 시계, 인공관절, 인공뼈 등으로 널리 쓰인다.

문 연구원은 “티타늄은 국내 시장이 연 8000억원, 세계적으로는 3조5000억원”이라며 “수요는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시장 규모는 계속 커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포스코가 2012년 카자흐스탄에 티타늄 공장을 세우면서 한국도 일본 러시아 미국에 이어 세계 네 번째로 티타늄 판재 일관 생산체제를 갖추게 됐다. 그는 “티타늄 가공이 늘어나면서 스크랩 발생량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이에 따라 스크랩으로 티타늄 잉곳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려는 경쟁이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문 연구원은 국내에서 금속 기술 전문가가 줄어들고 있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전자산업을 비롯해 각 산업 분야에서 고순도 금속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를 지원할 전문가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최첨단만을 쫓다 보니 대학에서도 이런 쪽을 가르칠 수 있는 교수가 없다”며 “옛날 기술이 새로운 것과 만나서 발전하는데 지금은 옛날에 연구됐던 기초 기술 맥이 거의 끊길 위험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