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동물원', 섬세한 연출 돋보인 '좋은 연극'
1막 2장. 다리를 저는 딸 로라(정운선)가 직업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 엄마 아만다(김성녀). 로라는 오래된 축음기 옆에 서서 엄마의 추궁을 듣는다. 불안하고 창백한 표정에 추운 듯 스웨터를 걸치고는 두 손을 꼬다 두세 번 힘없이 떨어뜨린다.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유리동물원’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장면이다. 배우의 표정과 움직임에서 ‘유리동물원’으로 은유되는 깨지기 쉽고 연약한 로라의 심상이 오롯이 가슴을 파고든다.

미국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가장 섬세한 작품을 참으로 섬세하게도 형상화한다. 윌리엄스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1930년대 미국 세인트루이스 뒷골목의 한 아파트를 배경으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무너져가는 가족의 모습을 애증 어린 시선으로 세밀하게 그려낸다. 사실주의와 시적 연극이 조화된 ‘회상극’으로, ‘젊은 윌리엄스’의 실험적인 시도가 두드러진 작품이다.

연극은 그가 창조한 독특한 캐릭터들을 생생하게 되살린다. 군더더기 없는 무대 연출이 캐릭터에 동화된 배우들의 연기에 집중하게 한다. 원작 희곡에서 복잡하게 지시된 자막과 영상 사용은 깔끔하게 지웠다. 세트 뒤편 스크린에는 극 초반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 이미지와 극 중반 초승달이 잠깐 뜰 뿐이다. 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가까운 첼로를 메인 악기로 선택한 효과가 탁월하게 발휘된다. 극의 감성을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조절한다. 첼로 연주자를 길거리 연주자로 극에 편입시킨 것도 연극성을 북돋웠다.

인간을 깊이 있게 이야기하고 보여주는 ‘좋은 연극’이다. 다만 극이 끝나고 커튼콜 시작 전 등장인물을 돌아가며 비추는 마무리 연출은 상투적이고 작위적이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자칫 극적 여운을 해칠 수 있다. 오는 30일까지, 2만~5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