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화동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집무실에서 강호갑 회장이 중견기업을 왜 육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소신을 밝히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서울 도화동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집무실에서 강호갑 회장이 중견기업을 왜 육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소신을 밝히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연간 매출 1조원을 올리는 중견기업이 2만개 정도 되면 한국 경제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의 실적에 따라 휘청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중견기업을 육성해 ‘글로벌 전문기업’ ‘명문 장수기업’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은 지난 1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내 중견기업은 ‘지원’이 아닌 ‘육성’ 대상”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강 회장과의 인터뷰는 중견련이 22일 법정단체로 새롭게 출범하는 시기에 맞춰 이뤄졌다. ‘중견기업 성장 촉진 및 경쟁력 강화에 관한 특별법’ 시행(22일)에 따라 중견련 위상도 사단법인에서 법정단체로 바뀐다. 중견련은 대한상의 중소기업중앙회에 이어 법에서 지위를 보장하는 세 번째 법정 경제단체다.

○독일식 가업승계 절실

강 회장은 “중견기업법은 오랜만에 여야가 합심해서 만들어낸 법”이라며 “중견기업 육성이 그만큼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라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기업을 키워 중소기업을 벗어나면 각종 규제에 막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사다리 걷어차기’에 대한 공감대가 낳은 긍정의 산물이라는 얘기다.

그는 그런 사례로 원자력발전기 부품업체인 BHI의 사례를 들었다. “BHI는 중소기업 시절 정부로부터 연구개발(R&D) 자금을 지원받아 원자력 발전소에 들어가는 부품을 개발했지만 납품할 때가 되자 규모가 커져 공공조달 시장에 부품을 납품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어요.”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기술개발을 지원했으면서도 성장했다는 이유로 밥그릇을 뺏어버리는 ‘모순’적 상황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강 회장은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앞으로 시행령 등을 통해 육성책을 채워가는 작업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견기업이 원하는 것은 중소기업처럼 ‘보호 장벽’을 쳐 달라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육성’해 달라는 것이다.

그는 중견기업의 또 다른 고민으로 가업승계 문제를 꼽았다. “독일은 8~9대에 걸쳐 가업을 이어가는데 우리는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해도 상속세 때문에 주식을 팔면 경영권이 없어진다”고 지적했다.

독일은 기업을 시작한 지 70년 이상 되는 ‘히든 챔피언’이 1300여개에 달하며, 이 중 3분의 1이 100년 이상 된 업체다. 반면 한국에서는 100년 이상 된 명문장수 기업이 5~6개에 불과하다.

강 회장은 “상속공제 한도와 대상을 확대하고 독일식 가업승계와 같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상임금은 기업 자율에

현안 중에는 통상임금 및 근로시간 단축을 ‘심각한 사안’으로 꼽았다. 본인이 운영하는 자동차 차체 부품 및 금형 제조업체인 신영도 통상임금이 적용되면 큰 타격을 받게 된다고 했다. 그는 “자동차 제조업은 시간에 따라 임금을 받는 근로자가 많아 전체 임금이 22%가량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큰일이다 싶어 회원사들을 조사해 보니 통상임금 적용으로 인해 중견기업이 매년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1050억원으로 집계됐다”고 설명했다.

근로시간 단축 역시 제조업 분야 중견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중견련 조사 결과 중견 제조기업의 87.4%가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생산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했다. 기업별 손실 규모도 145억원 안팎에 달했다. 강 회장은 “통상임금, 근로시간 단축 등의 문제는 법으로 규제할 것이 아니라 기업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파업은 동료 일자리 없애

대기업 노조와 이들이 주도하는 파업에 대해서는 “협력사 살인”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강하게 비판했다. 강 회장은 “자동차 산업의 파업은 ‘제조 살인’이나 마찬가지”라며 “대기업이 파업하면 협력업체 매출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일자리까지 없어진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중견련이 할 가장 중요한 업무로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꼽았다. 그는 “중견기업이 성장하는 것 자체가 청년들이 좋아할 만한 일자리가 많이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서울반도체 패션그룹형지 와이지원처럼 각 분야에서 독보적 경쟁력을 갖춘 중견기업들이 많이 나와야 청년 일자리뿐 아니라 우리 경제의 ‘허리’도 튼튼해진다는 것이다.

■ 강호갑 회장 약력

△60세 △경남 진주 △고려대 경영학과, 미국 조지아주립대 회계학 석사 △신영금속 대표이사 △중소기업중앙회 정책자문위원 △신영그룹 회장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김정은/김용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