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장미는 불에 탈 때 더 향기롭다
장미가 꽃을 피우고 시드는 과정을 열이레 동안 촬영하던 사진예술가 김아타. 바싹 마른 장미 다발을 쓰레기통에 던지려던 그는 문득 호기심이 발동해 꽃의 사체에 불을 지핀다. 순간 장미는 살아있을 때와 비교할 수 없는 진한 향기를 뿜어낸다. 장미에 대한 그의 상식은 무참히 깨졌다. 장미의 산화를 통해 그는 자신이 알고 있던 상식은 겨우 진실이라는 물고기가 두른 수많은 비늘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책은 세계적 사진예술가 김아타가 자신의 오랜 지적 역정을 기록한 철학적 산문집이다. 국내에선 미치광이 취급을 받던 그가 어떻게 서구 비평가들에게는 경이로운 존재로 비쳐지게 됐는지 작가가 스스로 기록한 투쟁의 궤적을 통해 살필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예술의 요체가 관조와 몰입, 해체의 과정에 있다고 설명한다. 내면에 가득 찬 관념의 찌꺼기를 모두 털어내고 자신을 완전히 소멸시켜야만 몰입과 해체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 과정의 핵심은 대화를 통한 화해다. “화해란 상반된 이해를 공유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철학, 사상, 개념을 만들어내는 물리적인 화합이고 정신적 섹스”라는 것. 예술 창작은 그런 화해의 정수다. 작가는 그 과정을 통해 치유받게 된다고 했다.

본질의 마지막 지층까지 파헤치는 작가의 치열한 사색 정신이 마치 새끼에게 자신의 몸을 먹이며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염낭거미처럼 비장하다. 인문학적 깊이와 유려한 문체가 글읽기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