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호랑이 원정대에 소속된 조선 포수 최순원과 백운학이 각각 잡은 호랑이. 이 호랑이는 경성 조선호텔과 도쿄 제국호텔에서 열린 호랑이 시식회에 쓰이기도 했다. 에이도스 제공
1917년 호랑이 원정대에 소속된 조선 포수 최순원과 백운학이 각각 잡은 호랑이. 이 호랑이는 경성 조선호텔과 도쿄 제국호텔에서 열린 호랑이 시식회에 쓰이기도 했다. 에이도스 제공
한반도는 한때 호담국(虎談國)이라 불릴 정도로 호랑이와 표범이 많았다. 전설과 민담에도 호랑이가 빠지지 않았고, 88서울올림픽 마스코트와 대한축구협회 엠블럼에도 호랑이가 들어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호랑이를 동물원에서만 볼 수 있다.

[책마을] 그 많던 호랑이는 어디 갔을까…일본인의 조선 호랑이 사냥기
《정호기》(征虎記)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선박업으로 부를 쌓은 일본인 사업가 야마모토 다다사부로가 1917년 한 달간 조선에 머무르며 벌인 호랑이 사냥 기록이다. 호랑이 사냥에는 강용근, 이윤희, 백운학 등 조선에서 이름을 날린 포수와 몰이꾼 150여명이 동원됐다. 책에는 도쿄를 출발해 부산을 거쳐 경성, 원산을 거친 사냥일지가 상세히 기록돼 있다.

책을 펼치면 포수들이 잡은 호랑이를 앞에 두고 찍은 기념사진, 사냥꾼들이 조선 땅을 거치며 찍은 사진이 담겨 있다. 야마모토는 단순한 무용담이 아니라 포수들을 어떻게 배치했는지, 어디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까지 사소한 일도 모두 기록했다. ‘정호기’의 해제를 맡은 이항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 등 5명의 연구자는 “일제는 해로운 맹수를 퇴치해 세상을 편안하게 한다는 명목으로 ‘해수구제(害獸驅除)’ 정책을 대대적으로 시행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왜 조선 호랑이를 잡으려 했을까. 1915년부터 1924년까지 사살된 호랑이는 89마리, 표범은 521마리에 달했다. 게다가 1917년은 일본이 제국주의 열강에 편입되느냐를 가르는 시기였다. 야마모토의 한국 호랑이 사냥은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의 확산, 일본군의 사기 진작, 부의 과시 등 다양한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전국시대의 무장은 진중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조선의 호랑이를 잡았습니다만, 다이쇼 시대의 저희들은 일본의 영토 내에서 호랑이를 잡아왔습니다. 여기에는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90~91쪽)

이 교수는 “‘정호기’를 통해 한국의 맹수가 어떻게 사라져 갔는지 관심을 갖는 것은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맹수들마저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지키려는 노력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