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실 하나에 꿰어본 한국 현대미술
정치사든 예술사든 역사서는 연대기적으로 서술하는 게 보통이다. 이런 서술 방식은 역사를 종적으로 파악하는 데는 좋지만 특정한 사건이나 중요한 흐름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지나치게 도식적이며 때로는 한 인물을 엉뚱한 맥락에 자리매김하는 우를 범한다. 사건의 횡적인 영향 관계와 시대 구성원을 간과하기도 한다.

《한국 현대미술의 지형도》를 쓴 박영택 경기대 교수는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방안을 작가와 작품에 대한 탐구에서 찾는다. 그는 한국 현대미술 작품을 면밀히 분석해 독창적인 재능을 발휘한 작가 117명과 대표작 151점을 선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 작가의 예술관과 작품이 다른 작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추적,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형도를 그렸다.

오윤의 ‘칼노래’  /휴머니스트 제공
오윤의 ‘칼노래’ /휴머니스트 제공
저자는 한국 현대미술의 큰 흐름을 만들어낸 작가로 박생광, 변관식, 이상범, 이인성, 김환기, 이응노, 김종영, 권진규 등 8명을 꼽았다. 서양화가 이인성은 식민지 치하라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이를 어떻게 화폭에 표현할까 고민했던 화가였다. 그의 시각은 박수근, 이중섭을 거쳐 오윤, 신학철, 안창홍 등 동시대 작가의 삶에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와 화풍은 다르지만 박수근의 ‘나무와 두 여인’, 오윤의 ‘칼노래’에는 한국인의 삶을 진솔하게 바라보려는 시선이 담겨 있다고 봤다. 또 박생광은 이미지의 주술성을 화두로 삼았고, 변관식과 이인성은 전통적 자연관을 구현하려 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분석을 토대로 저자는 일제강점기 일본을 통해 수용된 서구와 일본 미술의 영향에서 벗어나 한국 현대미술의 정체성을 확립해온 기록이 바로 한국 현대미술사라고 결론짓는다. 저자는 그러나 자신의 결론을 “한 미술평론가의 편애라는 관점으로 재구성된 미술사”라고 단정한다. 궁극적인 답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다양한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총체적인 진실에 다가설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가 이 책을 쓴 이유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