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두 남자의 '설전'이 美 자본주의 만들었다
[책마을] 두 남자의 '설전'이 美 자본주의 만들었다
‘공적신용은 어떤 주(州)가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다주며, 사적신용을 통해서는 (…) 산업이 증가하고 상품이 많아지며, 농업과 제조업이 융성하고, 해당 주의 진정한 부와 번영이 생성된다.’

미국의 초대 재무부 장관이자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 여섯명 중 하나인 알렉산더 해밀턴(사진 왼쪽)이 1780년 쓴 편지글이다. 오늘날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해밀턴이 이 글을 쓸 당시 미국에 은행은 몇 개였을까. 놀랍게도 단 세 곳뿐이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돈을 빌리고 빚을 지는 걸 도덕적 결함으로 생각했다. 오늘날 미국을 보면 상상할 수 없는 가치관이다. 사람들은 소비자 신용을 전당포업과 다름없다고 생각했고, 상업 신용도 파산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해밀턴은 신용의 상징인 은행을 ‘상업을 촉진하기 위해 고안된 모든 장치 가운데서 가장 행복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공화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1791년 초기 중앙은행 격인 미합중국은행을 세웠다. 약 46년이 지난 1837년 미국에는 은행이 627개로 크게 늘었다.

“모든 국가가 공공부채 때문에 허약해 진다는 건 너무도 자명한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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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턴의 뒤를 이어 네 번이나 재무부 장관을 연임하며 미국 경제를 이끈 앨버트 갤러틴(사진)은, 해밀턴과는 달리 공공부문의 부채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비록 후엔 바뀌었지만) 낮은 세금과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는 정책을 선호했다.

또 해밀턴이 연방주의자였던 반면 갤러틴은 각 주의 권리를 옹호하는 공화주의자에 가까웠다. 모두 알다시피 이 같은 논쟁들은 현재까지도 피할 수 없는 견해 차이로 이어지고 있다. 결국 이 둘은 영국과의 독립전쟁 승리 후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백지상태의 미국 경제를, 나아가 미국이라는 국가를 디자인한 인물들인 셈이다.

지난해 타계한 미국의 대표적인 경영사가 토머스 K 맥크로의 마지막 유작인 《미국 금융의 탄생》은 두 사람의 일대기와 정책들을 들여다보며 미국 경제의 탄생 과정을 조명한다.

해밀턴이 재무장관으로 취임했을 때 미국은 독립전쟁으로 진 외채에 허덕이던 허약한 국가였다. 우여곡절 끝에 연방정부를 구성하긴 했지만, 각기 다른 산업과 채무를 가진 주들이 간신히 붙어있는 상황. 해밀턴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각 주가 지고 있던 전쟁부채를 모두 연방정부가 떠안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복잡한 ‘금융기법’으로 관행과 다른 사항을 부분적으로 숨기며 이 안을 관철시켰다.

이로써 각 주를 연방으로 통합함과 동시에 해외에서의 신용도 확보해 재융자를 가능케 했다. 분열과 연합의 기로에서 결국 연방 중심으로 팽창해 온 미국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는 오늘날의 거대한 미국을 시작한 인물이나 다름 없다. 저자 또한 갤러틴의 ‘부채 갚기’ 정책이 해밀턴의 임기 이후에 나왔다는 것을 ‘미국의 행운’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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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턴은 농업국가였던 미국에서 제조업을 키우기 위해 관세를 올리고 산업을 지원하기도 했다. 주주들이 전 재산을 잃을 위험을 지지 않아도 되는 유한책임회사도 장려해 기업가정신을 독려했다. 이때부터 미국 모델은 세계 경제의 표준이 돼가고 있었다.

이런 해밀턴의 업적 때문인지, 저자는 두 사람을 동일 선상에 놓고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갤러틴보다는 해밀턴에 초점을 맞춘다. 갤러틴은 초기엔 해밀턴의 정책과 다른 길로 갔지만 결국 연방정부가 국내 개발을 지원해야 하는 데 동의했고, 자연스레 국가주의(연방주의)를 인정하게 된다.

책 제목은 《미국 금융의 탄생》이지만 실제 내용은 ‘두 인물을 통해 본 미국 건국기 경제사’ 정도에 가깝다. 미국 역사에 대한 관심 없이 오늘날 금융의 단면을 보려는 독자라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미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뿌리를 알고 싶다면 일독을 권한다. 현재는 망가져버린 미국 정치의 ‘타협과 존중’의 전통도 곳곳에서 배울 수 있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