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유엔에 널리 알린 '반기문 브랜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정치적 견해와 개인적 소회를 밝히는 데 매우 신중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민감한 질문에 요리조리 빠져나가기를 잘한다고 해서 ‘기름장어’라는 별명도 있다. 그런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미국 언론계에서 가장 유력한 아시아 전문 칼럼니스트인 톰 플레이트와의 대담집 《반기문과의 대화》에서다.

이 책은 저자와 반 총장이 2010~2012년 두 시간씩 모두 일곱 차례에 걸쳐 진행한 대담과 각자 부인을 동반하고 사적으로 만나 나눈 여섯 차례의 대화를 담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 반 총장에 대한 책들이 그가 어린 시절부터 ‘세속 교황’이 되기까지를 다뤘다면 이 책은 2006년 유엔 사무총장이 되고 난 이후의 이야기다.

반 총장은 저자의 도발적이고 날카로운 질문에 때로는 ‘기름장어’처럼 빠져나가기도 하지만 대부분 진솔하게 답변한다. 강력한 카리스마가 각광받는 시대에 겸손과 솔선수범의 리더십으로 일관하는 반 총장이 취임 때부터 비판적이던 서구 언론의 집중포화를 극복하고, 기존 유엔 조직 및 직원들과의 갈등과 반발을 이겨낸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준다.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고 24시간 전화 대기 중이며, 하루에 10차례 연설을 하고, 이코노미석을 타고 재난현장에 달려가는 사무총장으로서의 삶도 이야기한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분쟁과 대립, 지구 온난화와 북한 문제, 안전보장이사회 개혁 등에 대한 소신도 밝힌다.

저자는 대담 내용을 최대한 가감없이 소개하며 반 총장의 삶과 철학을 생생하게 그려낸 후 이렇게 글을 맺는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유엔 꼭대기에서 1주일에 7일, 하루 24시간 열심히 일하는 성실한 일꾼이 있다. 왠지 조금은 위안이 되지 않는가?”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