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중동 환자 몰려오는데…병원에 밥이 없다
한국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외국인이 매년 크게 늘고 있지만, 환자 간병인 비자는 물론 환자 음식을 공급하는 것에 제도적 허점이 있어 관련 법과 제도 정비가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외국인 환자용 식사 수요는 증가하고 있으나 적법한 절차에 의해 수입된 식재료가 부족, 급식업체들이 어쩔 수 없이 법을 위반하며 관련 음식을 공급 중이다. 식품위생법에는 정상적인 통관절차를 거쳐 한글이 표기된 식재료만을 사용해 음식을 만들도록 돼 있다.

그러나 러시아 중동 등에서 널리 사용되는 향신료 등은 수요가 적어 수입하는 업체가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국내 업체들은 보따리상들이 비정상적인 통로로 들여온 식재료를 이용해 음식을 만들고 있다.

한 급식업체 관계자는 “한국산 식재료만 사용하면 환자들의 입맛을 맞출 수 없고 그렇다고 직접 식재료를 수입하는 것은 비용측면에서 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외국인 환자를 위한 음식이 꼭 필요한 상황이어서 법을 위반하는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보따리상들이 수입한 식재료를 일부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한글 표시가 돼 있지 않은 식품 및 식품첨가물을 사용하다가 적발된 사업장은 식품위생법 10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식품등의 표시기준’에 따라 1~3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당한다.

정부는 2009년 ‘외국인 환자 유치’를 국가 신성장동력 사업으로 선정했다. 작년에만 15만명의 외국인이 국내 의료기관을 찾았다.

외국인 환자 급식사업을 하는 기업은 삼성에버랜드, CJ프레시웨이, 아워홈, 현대그린푸드 등이다.

A급식 회사는 한글 표기가 안된 러시아 식자재를 사용한 것과 관련, 사내 안전관리 담당 부서가 해당 식자재 사용 자제를 영업 담당 부서에 이달 초 권고했다가 실적을 중시하는 영업 부서가 “그렇게는 못한다”며 맞서 내부 갈등이 표출되기도 했다.

B사의 경우 이 같은 걸림돌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 11일 서울 강서구에 있는 한 대형병원과 공동으로 국산 및 공식 통관절차를 거쳐 수입된 러시아산 식재료만으로 러시아 환자식을 만들어 소개하는 시식회를 갖기도 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음식을 맛본 러시아 환자들 가운데 몇몇이 ‘고향의 맛과 미묘하게 차이가 난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고 말했다.

부자 외국인 환자들과 함께 입국하는 외국 간병인들의 비자가 연장되지 않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법무부에 따르면 외국인 환자 본인 및 배우자 등 동반 가족과 일부 국가 간병인에 대해서만 의료비자가 발급되고 있다. 그나마 지난 5월 이전까지 간병인에 대해서는 의료비자가 발급되지 않다가 아랍에미리트(UAE) 등 일부 중동 국가에 한해 의료비자 발급이 허용됐다.

서울 강서구 소재 한 척추 전문병원 관계자는 “러시아나 중동의 VIP 환자들은 거의 대부분 간병인을 대동하고 온다”며 “환자가 입원 기간을 연장하면 십중팔구 간병인 비자 연장이 되지 않아 원래 온 사람은 돌려보내고 새 간병인을 데리고 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고 토로했다.

김형미 대한영양사협회 상임이사는 “식품위생법에 따른 한글 표기 식자재 사용 의무화는 빠르게 변하고 있는 현실을 법이 좇지 못하고 있는 사례”라며 “국가 중점 사업인 외국인 환자 유치사업과도 배치되는 만큼 병원에 대해 예외를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환자는 15만5672명으로 전년(12만2297명)보다 27.3% 늘어났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 이외에 러시아 및 중동지역 국가 환자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게 특징이다.

러시아 환자는 63.7% 증가한 1만6325명이 입국해 4위에 올랐다. 외국인 환자 유치가 국가 신성장동력 사업으로 선정된 2009년 이후 러시아 환자는 매년 110.2%씩 증가해 왔다. 정부 간 환자송출 협약으로 중증질환자가 많이 찾는 UAE는 평균 1237만원의 진료비를 사용해 이 부문 1위에 올랐다.

송종현/이준혁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