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다윗의 '클릭질'에 무너져버린 골리앗
블로거들이 기존 뉴스 매체보다 앞서 속보를 전한다. 갓 등장한 신인이 기성 정치인을 무너뜨린다. 페이스북에서 조직된 민간 반군 세력이 기존 군대에 도전한다. 시민들의 참여로 정책 개혁을 이룬다. 이름 없는 뮤지션이 음반회사를 거치지 않고 유튜브에서 파란을 일으킨다. 파자마를 입고 일하는 20대 벤처 사업가가 거대 기업을 위협하고 억만장자가 되기도 한다. 디지털 시대가 가져온 ‘다윗’의 변신이다.

《거대 권력의 종말》은 디지털 혁명이 언론, 정당, 군대, 시장에 이르기까지 현대사회의 여러 영역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현상을 입체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방대한 데이터를 즉각, 끊임없이 전 세계 어디로든 보낼 수 있는 능력인 ‘급진적 연결성’이 전통적인 거대 기관을 급격히 뒤흔들고 신흥세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며 “거대 권력의 종말이 눈앞에 다가왔다”고 말한다.

기술은 가치중립적인 듯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게 저자의 생각. 그는 “기술은 그 자체로 특정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 디지털 소통수단이 주는 편의와 재미에 빠져 생각할 틈도 없이 그 관점을 받아들인다”고 우려한다. 예컨대 전 세계의 많은 아이폰 사용자들이 스티브 잡스와 그의 전설적인 리더십을 숭배하며 애플 제품을 열광적으로 소비하지만 실제로 애플 제품에 반영된 잡스의 시각에 대해 조명하는 사람은 적다는 것이다. 저자는 “개인용 컴퓨터의 등장에는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의 반체제 경향, 즉 당시 권력기관들의 태만에 대한 반작용이 있었다”고 덧붙인다.

기술의 진보는 전통 언론의 모습도 확 바꿔 놓았다. 대표적인 성공모델이 영국 가디언이다. 가디언은 일반인의 노동력과 제품, 콘텐츠를 동원하는 크라우드소싱을 활용한 탐사보도를 시도했다. 2009년 200만쪽이 넘는 국회의원 경비 지출 보고서를 인터넷에 올려 자발적인 독자들의 힘으로 분석한 것. 그 결과 사이트 방문객 중 절반이 넘는 인원이 참여해 80시간 만에 17만쪽을 분석했다. 전체의 약 20%가 사흘 만에 분석된 것이다.

인터넷, 소셜미디어는 기존 정치의 모습도 변화시켰다. 이라크 전쟁과 형편없는 의료 서비스 같은 기존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용기 있게 도전하는 사람들이 정계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저자는 “공직 수행에 필요한 기본 지식이 결여된 극단주의자나 선동가, 특정한 목적만을 좇는 정치인들이 양산될 위험도 그만큼 늘어났다”고 경고한다. 양대 정당 체제의 정부가 무너져가는 지금 시민의식을 지닌 지도자를 발굴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책을 개발하는 새로운 정치기관의 수립이 필요한 이유다.

저자가 하고 싶은 얘기는 결국 거대 권력의 종말은 거대한 기회라는 것이다. 그는 “거대 권력과 급진적 연결성이 지닌 각각의 장단점을 잘 취사 선택하면 이전보다 훨씬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