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삼성전자와의 특허전쟁에서 역전당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4일(현지시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애플이 삼성전자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판정한 것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ITC의 판정으로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애플의 이미지가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간 특허전에서 밀려왔던 삼성전자는 ‘카피캣(copycat·모방꾼)’이라는 오명을 벗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분석이다.

美 ITC "애플, 삼성전자 특허침해" 최종 판정…삼성 '카피캣 오명' 벗고 특허전 승기 잡아

○궁지에 몰린 애플

이번 판정으로 애플은 안방 시장인 미국에서 자사 일부 제품을 팔 수 없게 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60일 이내에 ITC의 판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미국 대통령이 ITC가 내린 판정에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는 지미 카터 행정부 이후 없을 정도로 드물기 때문이다.

수입금지 조치가 실행되더라도 애플이 입을 타격은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수입금지 제품이 대부분 구형 모델이어서다. 현 주력 모델인 아이폰4S와 아이폰5는 수입금지 대상이 아니다. 수입금지 대상인 아이폰4와 아이패드2도 현재 미국에 쌓아놓은 재고는 판매할 수 있다.

그러나 애플은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게 됐다. 자사 특허를 베꼈다며 먼저 삼성전자를 공격했던 애플이 오히려 삼성전자의 특허를 베낀 기업이라는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애플이 삼성전자가 제기한 특허소송을 방어하기 위해 세운 논리도 무너졌다는 평가다. 이번에 애플이 침해했다고 판정한 특허가 표준특허라는 점에서다. 애플은 삼성전자가 표준특허 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 프랜드(FRAND·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누구든 차별 없이 이용하고 추후 로열티를 낼 수 있도록 한 특허에 대해 침해 소송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삼성전자와의 소송에서 표준특허 이슈를 부각시킨 것은 업계 전반에 걸친 큰 소득”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ITC가 이번에 삼성전자의 표준특허를 인정함에 따라 애플의 주장이 더 이상 먹혀들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애플은 항소할 계획이다. 크리스틴 휴젯 애플 대변인은 “ITC가 예비판정을 뒤집은 것은 유감이다. 항소하겠다”고 말했다.

○반전 계기 마련한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애플과의 특허전에서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8월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북부지방법원은 삼성전자에 “애플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10억5000만달러(약 1조2000억원)를 배상하라”고 평결했다. 법원이 올해 3월 이 평결의 손해배상액 절반을 다시 계산하라고 재판결했지만 삼성이 밀리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무엇보다 표준특허를 인정받은 것이 가장 큰 성과다. 무선통신기술 관련 표준특허는 삼성전자가 애플을 공격하는 주요 무기다. 반면에 애플은 삼성전자가 사용자환경(UI) 디자인 등 상용특허를 침해했다고 주로 공격해왔다. 애플은 삼성전자의 전력을 훼손하기 위해 “표준특허를 남용하는 것은 산업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논리를 폈다. 특허 전문가들은 “이번 ITC 판정으로 삼성전자와 같은 표준특허 보유 기업들이 특허 소송에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애플이 삼성전자를 상대로 ITC에 제소한 특허 침해건은 오는 8월1일 최종 판정이 내려진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

■ 국제무역위원회(ITC)

미국에서 무역 문제에 관한 기업들의 제소를 심사해 대통령에게 권고하는 일을 하는 독립 행정기관.

준사법적 독립기관으로, 무역대표부와 함께 국제통상 문제를 담당하는 중요한 기구다. ITC는 대통령이 임명한 임기 9년의 위원 6명과 430여명의 조사인력으로 구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