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수 공정위장 후보도 사퇴…朴정부 6번째 인사참사, 끝일까?
김병관 국방장관 후보자의 낙마에 이어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도 25일 자진 사퇴했다. 국내 최고 로펌 출신의 100억원대 자산가로서 자질 논란과 세금 탈루 관련 의혹에 공직의 꿈을 접은 것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불과 한 달 만에 장·차관급 인사 낙마는 벌써 6명째다. 하루가 멀다하고 중도하차하는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도중에 뒤바뀐 청와대 비서관급 인사까지 포함하면 12명째다. 정치권에선 “이쯤되면 낙마한 인사들로만 축구팀을 구성하고도 남을 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돈다. 자고나면 사퇴 뉴스를 접하는 국민들 사이에선 “이젠 부실검증 차원을 넘어 솔직히 짜증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사퇴 이유도 국민들 입장에선 납득하기 어렵다. 성접대 의혹이나 무기중개사 고문 경력, 해외 비자금 계좌 등 평소 접하기 힘든 이유들이다. 한 후보자는 이날 공정위를 통해 배포한 ‘사퇴의 변’에서 “위원장직 수행의 적합성을 놓고 논란이 제기돼 국회 청문회 일정조차 잡히지 않은 채 장시간이 경과되고, 이로 인해 정부의 순조로운 출범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고 사퇴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시간부로 본업인 학교로 돌아가서 학자로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 제기된 해외 비자금 계좌 의혹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청와대에 따르면 한 후보자 사퇴의 결정적인 이유는 해외에 수십억원대 비자금 계좌를 운용하면서 세금을 탈루한 의혹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주 야당을 중심으로 한 후보자의 세금 탈루 의혹이 불거지면서 민정라인에서 사실 관계 파악에 나섰으며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난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 후보자 본인도 이 같은 청와대의 기류를 읽고 전날 저녁 청와대에 사퇴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한 후보자 본인이 해외 비자금 계좌 관리 등으로 공직을 맡기에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면 처음부터 청와대의 제의를 거절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 정무라인 관계자도 “해외 비자금 계좌 세금 탈루는 본인이 신고하지 않는 한 검증단계에서 걸러내기가 쉽지 않다”며 “세금 탈루가 있었다면 제안을 받았을 때 본인이 동의서에 서명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렇더라도 청와대의 인사검증 부실 책임은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한 후보자의 경우 해외 계좌 보유 사실이 이미 2011년 당시 자진 신고로 알려져 있는 만큼 본인에게 소명 절차만 거쳤어도 미리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여당 내에서조차 최근 잇단 낙마와 관련, 부실 검증 책임자에 대한 문책론이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선 임명권자인 박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여당 한 친박(친박근혜)계 인사는 “대통령이 과거 기록한 수첩에 의존해 특정인을 낙점해 내려보내면 실무진이 모든 문제를 샅샅이 뒤져 흠을 찾아내기가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대통령의 ‘나홀로 인선’ 스타일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의 이런 인선 스타일 탓에 대통령의 인사 독단을 막겠다는 취지로 청와대에 구성된 인사위원회(위원장 허태열 비서실장)는 유명무실해졌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새 정부 출범 한 달 만에 장·차관 후보자들이 잇따라 교체되면서 박근혜 정부가 시동도 걸기 전에 국정운영 동력을 상실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 능력을 뒷받침하는 지지율은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한국갤럽 조사(18~21일)에서는 대통령 지지율이 44%로 역대 대통령의 취임 초 지지율 가운데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정적인 응답자를 대상으로 비판적인 이유를 물은 결과 ‘인사 실패’가 첫 번째로 꼽혔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