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개발연구원이 의미심장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전세금을 빼거나 사채까지 손을 벌린 ‘메디컬푸어’가 54만 가구나 된다는 것이다. 가구 소득의 10% 이상을 의료비에 지출하는 ‘재난적 의료비’에 시달리는 가구가 281만에 육박할 정도로 위협적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몸 한번 고장 나면 재난이 되는 시대, 한국인들을 ‘메디컬푸어’로 만드는 주범은 심혈관 질환이다. 심혈관 질환은 한국인의 3대 사망원인으로 지목될 정도로 심각하다. 이번 보고서에서도 재난적 의료비가 가장 많이 발생한 원인으로 꼽혔다. 현재 국내 성인 4명 중 1명은 고혈압 환자다. 또 10명 중 1명은 당뇨병을 앓고 있다. 이 같은 질환이 심근경색, 뇌출혈 등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이어지면 높은 사망률과 더불어 고액의 진료비가 가계를 강타하게 된다. 특히 심혈관 질환은 특성상 중장년층 가구주에게서 빈번하게 나타난다. 이른바 ‘가장이 쓰러지는’ 뜻밖의 위기를 가져올 수도 있다.

하지만 심혈관 질환은 증상이 서서히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 물론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증상을 개선할 수 있기는 하다. 또 의외로 예방관리 방법이 쉽고 간단하다. 최근 중장년층 사이에서 회자되는 신조어로 ‘심혈관 테크’가 주목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위험요소만 잘 파악하고 꾸준히, 지속적으로 관리한다면 심혈관 질환은 더 이상 ‘집을 거덜 내는’ 질환이 아닌 것이다.

‘심혈관 테크’를 위해선 우선 심혈관 질환의 위험요소를 살펴봐야 한다. 연령을 비롯해 심장병이나 뇌졸중 등의 가족력, 뇌졸중 및 심장질환 병력은 관리가 어려운 위험요소이지만, 혈압,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 당뇨병, 흡연, 운동 등은 일상생활을 지속하면서도 충분히 관리가 가능하다.

먼저 혈압, 혈당 및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는 평소 정기검진을 통해 위험 수위에 이르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좋다. 음식은 골고루 먹되 짜지 않게 적당량을 먹는 습관을 가지도록 한다. 또 적절한 운동을 무리가 가지 않도록 꾸준히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다.

더불어 고혈압, 당뇨병, 고콜레스테롤혈증, 비만 등 복합적 심혈관 위험요소가 있는 사람이라면 저용량 아스피린 요법을 고려해볼 수 있다. 전문의나 약사와의 상담을 통해 아스피린을 하루 한 알씩 매일 복용할 경우, 심혈관 질환의 예방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아스피린은 개발된 지 100년이 넘은 약물로 안전성과 경제성을 입증한 의약품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심혈관 질환 예방을 위한 필수약물 리스트에 포함시킨 약물이기도 하다.

심혈관 테크는 지루할 정도로 쉽고 간편하다. 하지만 이를 실천해 건강한 삶을 영위하느냐, 하루 아침에 날벼락을 맞아 가계에 심각한 위협을 받을 것이냐는 전적으로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 있다. 심혈관 테크를 실천해 재난에 유비무환으로 대처하는 가정이 늘어나길 기대해본다.

박승우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