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조기 퇴임한 시라카와 마사아키 전 일본은행 총재(사진)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아베노믹스(무제한 금융완화와 재정지출 확대)’를 “위험한 발상”이라고 정면 비판했다.

시라카와 전 총재는 이날 저녁 퇴임 기자회견에서 “금융완화로 물가상승률 목표치 2%를 달성하겠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수년째 미국과 유럽이 대규모 양적완화에 나서고 있지만 물가상승률이 제자리인 점을 볼 때 통화 공급 확대와 물가상승 간 상관관계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라카와 전 총재는 20일 구로다 하루히코 신임 총재 체제로 새로 출범하는 일본은행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그는 “중앙은행이 시장이 원하는 대로만 움직이면 독립성과 신뢰를 잃어버린다”며 “일본은행이 아베노믹스에 대한 시장의 기대에 지나치게 부응하려 애쓰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구로다 총재의 새로운 금융정책이 훗날 의외의 난관에 봉착할 우려도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일본 경제의 근본적 체질 개선을 위해서는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노동인구 감소에 대비해야 하며 규제 철폐에도 앞장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라카와 전 총재는 일본 내에서 대표적인 매파(금융완화 반대)로 분류된다. 하지만 2008년 4월 일본은행 총재 취임 후 5년간 그는 오히려 비둘기파(금융완화 찬성)에 가까운 행보를 보였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로 기준금리를 연 0~0.1%로 내리고, 금융완화 정책인 자산매입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지난해 2월 물가상승률 목표치 1%를 도입한 것도 시라카와 전 총재의 결정이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취임한 아베 총리에게 시라카와 전 총재의 금융완화책은 성에 차지 않는 수준이었다. 아베 정부는 일본은행에 무제한 금융완화를 실시할 것을 요구했지만 시라카와 전 총재는 “지금 수준으로도 충분하다”며 완강히 거부했다. 결국 그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임기 만료(4월8일) 전에 조기 사임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