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흑백사진이 하나 있다. 밭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언덕길을 넘어오는 아낙네와 아이, 비탈의 소나무와 저 멀리 강변에서 흔들리는 포플러들…. 1955년 7월 뚝섬 백사장에서 대한사진예술연구회가 연 야외 촬영대회에서 특선을 차지한 김희중(전 내셔널지오그래피 편집장)의 ‘봉은사 가는 길’이다.

이 사진은 단지 아낙네와 아이만을 찍은 게 아니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1950년대의 기억, 그것도 전쟁으로 피폐한 서울이 아니라 열여덟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설렘과 긍정이 가득한 풍경이다. 이처럼 사진은 단지 대상을 인화지에 그대로 옮겨 놓은 것 이상이다. 작가의 눈과 마음을 통해 상상력이 더해져 보이는 것 이상의 의미를 찍는 도구다.

《마음으로 사진 읽기》는 국내 최초의 사진심리학자인 신수진 연세대 교수가 읽어주는 사진 속 마음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시각심리학과 사진이론을 접목해 사진심리학이라는 영역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척한 인물. 그는 이 책에서 이형록 주명덕 배병우 구본창 원성원 정연두 등 사진작가 35명의 작품을 통해 그 안에 담긴 마음을 기억, 꿈, 관계, 떠남, 즐거움, 감각 등 6개 테마로 읽어낸다.

변순철의 ‘짝패’ 시리즈에는 한눈에 봐도 잘 어울리지 않는 남녀가 등장한다. 홀쭉한 동양인과 가슴이 축 처질 만큼 풍만한 백인, 침대에 기댄 흑인 남자와 백인 여자. 이 사진에서 신 교수는 그들의 눈빛만큼은 신비할 정도로 닮아 있음을 읽어낸다. 서로가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바라보며 배운 것이라고 해석한다. 거울에 비친 딸의 모습을 뒤에서 찍은 전몽각의 ‘윤미네 집’에서는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내리사랑의 공명을 체험한다.

신 교수는 “예술작품의 가치는 미술관이나 경매장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감상자의 눈 속에서 결정된다”며 “그것이 바로 창의적 상상력의 힘”이라고 강조한다. 마음을 담아서 사진을 찍고 그 안에 담긴 마음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