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조명과 수많은 악기가 어우러진 음악, 배우들의 땀방울과 혼신을 다한 연기…. 공연 무대는 ‘판타지’다. 관객들이 현실을 잊고 온전히 무대 위의 작은 세계에 빠져들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대는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사람들의 노력이 빚어낸 결과물이어서다.

하나의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까지는 공연기획자, 제작자, 연출, 배우, 무대 스태프, 마케터, 문화행정가, 티켓 마스터, 하우스 매니저 등 수많은 사람의 손과 정성을 거쳐야 한다. 한국 공연산업이 날로 성장하면서 이 같은 작업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일도 중요해지고 있다.

《무대의 탄생》은 연극, 뮤지컬, 무용, 오페라,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의 무대 작품들이 어떻게 기획됐고 성공과 실패의 원인은 무엇이었는지를 담고 있다. “우리 공연예술계는 이렇듯 소중한 경험들에 대한 기록화 작업에 매우 소홀한 편이어서 소중한 경험과 노하우들이 체계적으로 축적되지 못하고 ‘도제식’ 또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암묵지’ 형태로 전달되는 경향이 짙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대학에서 문화기획과 예술경영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수많은 공연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저자가 지난 10년 동안 국내 공연예술계에서 화제가 됐던 10개의 사례를 통해 하나의 무대가 만들어지기까지 일어나는 일들을 책에 담았다. 무대 뒤편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다양한 에피소드와 뒷이야기도 함께 담고 있다.

2004년 첫선을 보여 관객 동원 17만명, 객석점유율 78%를 기록한 ‘연극열전’의 성공 요인은 관객과 철저히 호흡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이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설문조사를 통해 대상 관객층을 명확하게 설정했고 ‘연애인(演愛人)’ 회원제 운영 등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 애썼다. 관객의 요구를 읽어내고 변화를 주도하는 ‘통찰력 있는 기획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2000년 개관한 이래 독자적인 브랜드를 구축해온 LG아트센터의 장점은 ‘차별화’와 ‘지속성’이다. 초대권 없애기, 시즌제 도입, 무료회원제 등으로 선도적 공연장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오페라의 유령’ 장기 공연으로 고전적 이미지를 강화했고 세계적 무용가 피나 바우쉬와 공동으로 무용을 제작하는 등 차별화된 무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2003년 상암월드컵주경기장에서 열렸던 오페라 ‘투란도트’의 성공 이후 유행한 ‘운동장 오페라’들이 줄줄이 실패를 겪어야만 했던 이유, 일본 최대 공연기업 ‘시키씨어터컴퍼니’의 한국 진출작 ‘라이온 킹’ 뮤지컬이 왜 고전했는지 등에 대해서도 풀어놓았다.

책 말미에 제시한 예술경영 10계명은 공연기획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지침이다. ‘신뢰자본을 쌓아라’ ‘예술경영은 추상화가 아니라 정밀화다’ ‘예술경영은 팀워크와 협업의 두 바퀴로 굴러 간다’ ‘예술가와 관객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한다’ ‘관객과 호흡하는 반 발자국 앞선 기획을 내놓아야 한다’ 등 현업에 있는 사람이라면 귀 기울일 만한 말들이다.

기획자와 마케터 등 공연 관계자들에게는 유용한 참고 서적이 될 것이다. 완성된 무대만을 보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열혈’ 관객에게는 무대 뒤편에 대한 호기심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