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는 낭만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따뜻한 햇살과 쪽빛 바다, 아담한 백색 건물들이 떠오르면서 일탈의 욕구가 발동한다. 그렇게 지중해를 찾는 관광객이 한 해 2억3000만명이다. 하지만 관광지로서의 모습은 지중해 역사의 극히 일부분만을 반영한다. 지중해가 대중관광지가 된 건 20세기 후반 들어서다. 외화를 벌기 위해 관광지로 개발한 지중해 유역의 정부들과 대형 여행사들, 음산한 날씨를 피하려는 북유럽인들, 비행기의 등장이 맞물렸다. 그 이전에는 어땠을까. 페니키아, 그리스, 로마, 이슬람 등 다양한 세력들의 쟁탈전이 벌어지던 수천년 전쟁터이자 수많은 상인들이 오가던 교역로였고 서양 문명이 꽃핀 ‘액체 대륙’이었다.

케임브리지대 지중해사 교수인 데이비드 아불라피아는 1144쪽의 방대한 저작 《위대한 바다》에서 기원전 20000년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가운데 바다’의 역사를 치밀하게 그린다. 저자는 지중해사를 이끌어온 요인으로 지형, 해류 등 지리적 특성을 꼽는 페르낭 브로델의 시각을 반박하며 ‘인간 중심’의 지중해사를 강조한다.

이 책은 그래서 군주와 상인, 사제, 장인 등 인간이 주도하는 지중해의 전쟁사, 상업사, 종교사, 기술사다. 저자는 또 통합성보다는 다양성을 강조한다. 특정 주제로 엮어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기보다는 지중해라는 터전에서 얼마나 다양한 인종, 종교, 정치세력이 각축을 벌여왔는지를 통사적으로 풀어내는 방식이다.

그는 지중해 역사를 크게 다섯 시기로 분류한다. △트로이가 함락된 시기인 기원전 1200년 이후의 청동기 말엽으로 ‘고대 역사상 최악의 재난기’로 알려진 시기(기원전 22000~1000년) △1기의 재난을 딛고 로마 시대 등을 거치며 교역의 호수로 재건되는 시기(기원전 1000년~서기 600년) △지중해가 지난날의 부진에서 서서히 벗어나던 중 1347년 흑사병의 출현과 더불어 커다란 위기를 맞았던 시기(600~1350년) △지중해가 대서양과 경쟁을 벌이며 대서양 국가들의 지배권에 맞서다가 1869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면서 인도양과 직접 통했던 시기(1350~1830년) △인도양으로 가는 통로로만 기능하다가 관광지 등 예기치 못한 정체성을 새롭게 발견한 현재까지의 시기(1830~2010년)다. 저자 스스로의 분류지만 지중해의 긴 역사와 수많은 사건들을 담다 보니 이 같은 시기 규정이 큰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저자는 지중해가 이제는 서구 지역의 중심적 위치를 상실했다고 진단한다. 유럽의 무게 중심이 남유럽보다는 북부에 쏠려 있고, 중국도 세계의 중심 국가로 부상했다. 또 지구촌 어느 곳이든 비행기와 인터넷으로 쉽게 연결된다. 따라서 지중해는 21세기 세계 경제 속에서 글로벌한 의미가 아닌 지역적 의미밖에 갖지 못할 거란 게 그의 설명이다.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지중해가 된 것이고, 지중해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세계도 5기 지중해를 끝으로 종말을 맞게 됐다. 하지만 지중해는 지구상의 색다른 사회들이 서로 활발하게 교류하던 지역이었으며, 인류 문명의 역사 면에서도 다른 대양이 결코 넘볼 수 없는 역할을 수행했다.”

워낙 방대한 분량인 탓에 어지간한 관심과 인내 없이는 끝까지 독파하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한국의 대중 독자들 입장에서는 멀리 떨어진 지역인데다 생소한 인명과 지명이 몰입을 쉽지 않게 만든다. 하지만 인류 문명과 역사에 관한 식견을 높이고 싶은 독자라면 대가의 ‘지중해 강의’를 분명 반길 듯싶다. 독서 후엔 우리의 바다 문명은 어땠는지 알고 싶은 갈증도 생긴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