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양반댁은 지배이념과 신분질서를 몸으로 익히도록 만들어졌다. 크게 안주인이 사용하는 안채와 바깥 양반이 쓰는 사랑채, 하인들의 거처인 행랑채로 구분돼 있다. ‘부부유별’이란 유교 이념에 따라 남편과 아내의 공간을 분리했고 신분질서를 구현하기 위해 주인과 하인의 공간을 따로 배치했다. 행랑채에서 사랑채를 바라보는 하인의 시선은 사랑채 누마루(한층 높게 만든 마루)에 닿는다. 하인이 고개를 들지 않는 이상 주인의 발 정도만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사랑채의 주인은 행랑채 하인의 모든 것을 굽어보면서 감시할 수 있다.

《길들이는 건축 길들여진 인간》은 사람들을 길들이고 지배할 수 있는 건축의 정치·사회학적 의미를 파헤친 책이다. 조선 시대의 양반집에서부터 궁궐과 도성, 현대 도시와 건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 및 치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건축의 실체에 접근한다. 1부에서는 사회적 이념에 봉사하는 건축에 대해 설명하고 2부에서는 사회적 이념에 맞서는 건축을 이야기한다.

건축은 공간을 의도적으로 조작하는 기술이다. 오랜 세월 권력과 사회 지배 이념의 하녀로 기능하면서 길들이는 자와 길들여지는 자 간에는 은밀한 투쟁이 계속돼 왔다. 이 같은 사회학적 관점에서 조선의 궁궐을 살펴보면 왕이 신하를 길들이기 위한 장치였음을 알 수 있다. 경복궁 서쪽에서 흘러들어와 남쪽 광화문 옆으로 빠져가는 금천(禁川)은 왕과 신하의 심리적 거리를 조절하기 위한 장치였다. 금천이 경계로 가르고 있는 것은 왕의 공간과 신하의 공간이다. 세자와 왕의 공간 사이에 금천 같은 것은 없다.


신하가 왕을 알현하러 가는 여정도 특별하게 조작함으로써 왕의 권위를 자연스럽게 인정하도록 만들었다. 왕이 공식 집무를 했던 근정전으로 신하가 가는 과정이 대표적이다. 신하는 먼저 근정문 앞에서 대기해야 한다. 근정문 앞에는 금천이 흐른다. 신하는 근정문 좌우에 있는 두 개의 협문을 사용해 들어갔다. 근정문은 왕족들만 사용했기 때문이다. 근정전 앞에 다다르면 건물 아래에 이중 월대(기단)가 높게 설치돼 있음을 발견한다. 이 월대는 시각적으로 상승감을 강화한다.

길들이기를 의도적으로 거부한 건축물도 있다. 독일의 한스 샤로운이 설계한 베를린필하모닉 콘서트홀은 권위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기존 대형 공연장과 달리 외관을 작고 낮아 보이게 만들었다. 내부 객석도 분산 배치해 A구역에서 B구역의 관객을 볼 수 없도록 했다. 샤로운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협조한 건축가 알레르트 슈페어가 전체주의 구현을 위해 나치 전당 대회 등에서 활용한 기단(집터 위에 한층 높게 쌓은 단)과 열주(지붕 아래 대들보를 받치며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진 다수의 기둥) 등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프랭크 게리의 월트디즈니 콘서트홀도 마찬가지다. 자유 곡면으로 감싼 형태로 기존 콘서트홀과 다르다. 1992년 LA 폭동 이후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를 순화할 목적으로 지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새로운 수도로 상정했던 세종시의 원안에는 도시 중심부에 생산성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업무시설이 아니라 시민들이 공유할 수 있는 공원을 배치했다. 그러나 정부 기관 중 일부만 이전하면서 원안과 달라졌다. 이처럼 무엇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느냐에 따라 건축의 표정은 달라진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