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미케네인들은 베일에 싸여 있다. 그들은 기원전 약 1900년에서 기원전 1100년 사이에 번성했다. 사자 문장과 전투 마차를 좋아하는 우락부락한 ‘근육질 문명’의 주인공이었다. 그들의 전성기를 뒷받침한 것은 농업이었다. 처음엔 작은 농장에서 다양한 생명을 키웠다. 빵을 만들 밀과 맥주를 담글 보리를 재배하려고 애썼고, 젖을 얻기 위해 염소와 양도 몇 마리 쳤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농부들은 자신들의 농토가 포도 재배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에겐 포도주를 담가 다른 물품과 교환하는 게 더 이익이었다. 이들은 온화한 날씨가 이어지자 삼림을 벌목하고 미개간지를 경작해 포도밭을 넓혔다. 교역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자 모든 농장은 특화됐다. 식품 창고와 도로도 건설했다. 사회는 지속가능한 규모로 확장했다. 하지만 미케네인들은 일순간에 사라졌다. 도대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미케네 문명의 모습을 추측하며 기록을 남겼다. 기후가 건조해지면서 미케네는 산출이 적은 마른 땅으로 변했다는 것. 특화된 농장들은 자연 회복력을 잃어버리고 황무지가 됐다. 교역으로 바꿀 것이 없어지자 자급자족이 불가능해진 문명이 쇠락해버렸다는 것이다.

미국의 농경학자 에번 프레이저는 《음식의 제국》에서 식량이 어떻게 문명의 흥망성쇠를 지배해왔는지 보여준다. 이 책은 고대 메소포타미아부터 현대의 캘리포니아까지 식품이 인간의 운명을 지배해온 과정을 서술한 연대기다. 식량이 문명의 흥망성쇠를 좌우한 배후라고 주장한다. 문명은 식량이 있는 곳에서 싹텄고, 식량난이 심해지면 문명도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것.

도시 문화 예술 종교 등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잉여 식품의 생산과 교환’이라는 토대 위에 세워졌다. 식량난은 농민봉기, 정권교체, 국가 간의 전쟁 등 세계적 파국을 초래하며 문명의 존폐를 위협해왔다.

저자는 18세기 후반 프랑스를 예로 든다. 1788년 프랑스에서는 기근이 일어났다.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로 인한 지구의 한랭화와 엘니뇨, 도시화 현상에 따른 것이었다. 지배 권력은 주민들에게 식량을 공급하며 위기를 넘기려 했다. 그러나 식료품 가격은 50%나 치솟았다. 상인들은 비축분을 내다 팔아 큰돈을 벌었다. 게으른 상인과 지주가 서민의 피땀으로 주머니를 불린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파리에서 일어난 사상 최대의 식량 폭동은 결국 프랑스 혁명으로 끝을 맺었다.

저자는 “정부가 식량 안보보다 수출을 촉진하는 정책을 펼 때 사람들은 더욱 굶주린다”고 말한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 대기근을 키운 건 왜곡된 식품시장이었다. 감자는 축축한 아일랜드 토양에서 잘 자랐다. 1845년 800만명 인구 중 300만명이 감자만 먹고 연명했다. 어느날 감자를 썩게 하는 감자역병이 발병했다. 100만명이 굶어 죽고 100만명은 북미 호주 등지로 흩어졌다. 그러나 주민들이 굶주리는 동안에도 아일랜드의 지주들은 곡물을 해외로 수출했다.

저자는 21세기 놀라운 농업 생산성과 유전자 변형 작물의 시대에서도 식량의 위기는 예외가 아니라고 말한다. 2030년께 세계 인구가 83억명을 돌파하면 세계 식량 수요는 50% 급등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석유 고갈 사태로 화학비료 공급이 끊기면 작물 생산량은 절반으로 떨어질 수 있다. 저자는 그동안 역사의 추는 풍요의 궤적을 지나왔지만 앞으로는 재앙 수준의 식품가격 폭등이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안정적인 식품 공급이 유지되기 위한 조건으로 ‘생물지역주의’를 든다. 이는 작고 다양성을 갖춘 농장이 소비자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 모델이다. 하지만 60억명을 먹여살리기 위해선 이것이 국제교역망 안에 자리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지역에서 효율적으로 기를 수 없는 작물은 멀리서 싸게 구입하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역’과 ‘세계’의 적절한 조합이 현대 식품 제국을 유지할 수 있는 최선의 희망이라고 역설한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