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서 발표한 논문은 미국 경제학자들의 경제정책 선호 유형이 이념에 얼마나 좌우되는지를 밝혔다. 지난 16년간 경제학자들이 공개적으로 찬반의견을 밝힌 정책을 분석해 이들이 좌우의 이념적 기준을 얼마나 넘나들었는지를 들여다본 것이다.

결론은 이렇다. 한 경제학자가 좌우를 넘나든 경우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 극심하게 한쪽으로 기울어진 선호도를 보였다. 예컨대 자유주의적 정책을 564번 지지한 사람이 개입주의적 정책은 5번만 지지한 경우다. 이 결과는 이념에서 자유롭다는 경제학의 주장이 현실에서는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 경제의 방향에 쓴 소리를 아끼지 않던 좌승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이번엔 ‘경제학 비판서’를 펴냈다. 지난 5월 출간됐지만 최근 선거를 앞두고 추진되는 경제정책과 맞물려 새삼 주목받고 있는 《경제발전의 철학적 기초》다. 기존 주류 경제학은 ‘이념으로부터의 해방’을 외치며 가치중립적인 것처럼 스스로를 포장했지만 현실의 경제정책은 이념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 특정 이념은 특정한 정치성향과 이를 통한 경제 제도, 정책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경제학은 이념을 외부 요인으로 보고 있어 경제발전의 근본 동인을 제대로 다룰 수 없다는 주장이다.

좌 교수는 이념을 내재한 새로운 경제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념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을 객관화하는 작업도 쉽지 않다. 그래서 그가 내놓는 개념이 ‘발전친화적’ 경제발전이론이다. 수많은 이념 중 어떤 이념이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지를 밝혀냄으로써 이미 해체되다시피 한 경제발전이론을 재건하겠다는 시도다.

저자가 말하는 경제발전이란 ‘스스로 도와 성공하는 경제주체들을 우대하는 경제적 차별화를 통해 모든 주체들이 동기부여되고, 이들이 경쟁적으로 흥하는 다른 주체를 따라 배움으로써 성공 유전자가 되풀이되고 복제·양산돼 이를 체화한 경제주체들의 수가 증폭되는 과정’이다. 결국 기업은 스스로 도와 성공해야 하고 정부는 성공한 기업을 우대하는 ‘차별화’ 정책을 써야 하며 나머지 경제주체는 ‘흥하는 이웃’을 따라 배워야 모두가 발전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자본주의 경제는 ‘기업경제’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기업 없이 경제발전은 시작될 수도 지속될 수도 없다는 것. 하지만 현재 기업이 처한 현실은 지금의 한국 사회처럼 임의적인 필요에 따라 청산 대상이 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일자리창출의 주체라며 너도 나도 러브콜을 보내는 대상이기도 한다. 좌 교수는 ‘중세의 삶의 터전이자 부의 원천이었던 토지를 대체한 게 현대의 기업’이라는 논지로 기업의 일자리 창출 능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근의 경제민주화 논의도 비판한다. 흥하는 경제주체를 차별화하는 정책을 펴고 그를 따라 배워야하는 게 경제발전의 원리지만, 차별화가 아닌 하향평준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

그에 따르면 대기업에 경제력이 집중된 현상도 대기업끼리의 경쟁을 막는 규제 때문이다. 소위 ‘문어발 확장’을 문제삼아 각 기업의 영역을 제한한 규제는 오히려 대기업이 경쟁 없이 편한 길을 갈 수 있게 하면서 부를 편중시키고 경제를 정체시켰다. 하지만 아직도 이 규제가 중소기업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로 해당 분야의 독과점 현상을 부추기고 있는 게 포퓰리즘 정책의 한계다. 그는 여러 기업이 각축하고 경쟁을 만들어내지 않고는 경제력 집중 문제를 풀 수 없다고 말한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