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지 마시오. 난 나비밖에 모르는 사람이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나비 박사’ 석주명 선생의 최후는 허망했다. 6·25 전쟁 통에 평생 모은 75만여마리의 나비 표본을 모두 잃어버린 석 선생. 그 충격으로 넋을 잃은 눈빛이 문제였을까. 서울에서 인민군으로 오인받아 불의의 총격을 받고 42년의 짧은 생을 마쳤다.

1908년 평양에서 태어난 석 선생이 나비와 인연을 맺은 건 일본 유학 때였다. 가고시마농림학교를 다니던 중 일본곤충학회장을 지낸 오카지마 교수가 그의 재능을 알아봤다. “남이 하지 않는 것을 10년만 하면 전문가가 된다”는 말에 석 선생은 곤충학자의 길로 들어섰다.

1931년 송도고등보통학교 교사로 돌아온 그는 20년간 75만여마리의 나비를 채집하고 128편의 논문을 썼다. 학교 방학숙제 ‘곤충채집’은 그에게서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한국 나비를 248종으로 분류한 ‘조선산 나비 총목록’은 한국인 저서 최초로 영국왕립학회 도서관에 소장됐다.

언어학에도 밝았다. 일제 말 제주생약연구소장으로 일하며 펴낸 ‘제주도 방언집’은 지금도 방언 연구의 중요한 사료다. 1950년 전쟁이 났음에도 서울 와룡동 국립과학관에 모아둔 표본 75만마리를 포기하지 못했던 석 선생. 폭격으로 ‘분신’을 모두 잃고 그 자신 또한 한 마리 나비가 되어 세상을 떠났다. 62년 전 오늘이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