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는 사람들에게 고도의 합리성을 요구해왔다. 논리적 추론, 분석적 사고, 확률과 통계에 기초한 방법론, 매뉴얼화된 대응지침은 인간의 실수를 최소화하고 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었고 나름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때때로 고착된 시스템이 인간의 창조적 능력을 제약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고 숫자와 데이터에 대한 맹신이 기업과 조직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 직관이 어떻게 정의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무엇을 바탕으로 나왔는지가 중요하다. 일순간 번뜩이는 생각처럼 보이지만 탁월한 직관은 풍부한 경험에서 나온다.

《인튜이션》의 저자 게리 클라인은 40년간 생생한 현장연구를 바탕으로 인지과학에서 ‘자연주의 의사결정론’이라는 분야를 새롭게 개척했다. 그의 연구는 일반적인 인지과학 연구 흐름과는 달리 ‘통제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긴급하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 인간의 직관력은 무엇에 근거해 작동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책에 실린 52개의 사례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주택가 단층집에서 발생한 화재현장에 출동한 소방반장이 자신의 초능력(?)을 이용해 위험을 모면한 이야기이다.

‘화재가 난 곳은 집 뒤편에 있는 부엌이었다. 소방반장은 호스를 든 대원들을 이끌고 건물 뒤로 가 물을 살포하기 시작했으나 불은 여전히 활활 타올랐다. 그는 불길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것 참 이상하네.”

물을 그만큼 뿌렸으면 효과가 있어야 했다. 다시 물을 뿌려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대원들은 뒤로 물러나 대열을 갖추었다. 바로 그때 그에게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명확한 징후는 없었지만 그 집에 계속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는 대원들에게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쳤다. 색다를 것 없는 평범한 건물이었지만 그의 뇌를 흔드는 예감이 있었다. 그와 대원들이 서둘러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들이 서 있었던 바닥이 내려앉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만약 대원들이 건물 안에 있었더라면 지하의 불구덩이로 떨어져 사망했을 것이다.

저자는 그 소방반장에게 더 자세히 질문한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그 집에 지하실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대원들을 철수시킬 때 거실 바로 밑에 있는 지하실에서 화재가 났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러나 왜 불이 꺼지지 않는지 의아해했고, 단독주택 부엌에서 난 작은 화재치고는 거실이 너무 뜨거웠으며, 집안이 너무 조용하다고 느꼈다. 보통 화재가 나면 시끄러워지는데, 특히 열기를 뿜어내는 화재는 훨씬 더 시끄러운 법이다.

후에 생각하면 소방반장이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이유가 분명히 드러난다. 부엌이 아닌 지하실에서 발생한 화재였기 때문에 물을 뿌려도 진화가 되지 않았고 열기는 예상보다 뜨거웠으며 바닥이 소음을 차단하는 방음막 역할을 했기 때문에 주변은 뜨겁지만 조용했던 것이다.

소방반장은 수많은 화재진압 현장 경험을 통해 화재의 패턴을 잘 알고 있었다. 비록 패턴의 특징들을 말로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었지만 화재 현장이 과거의 패턴과 일치하지 않자 불편함을 느낀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현장 사례연구를 통해 사람들이 어떻게 탁월한 결정을 내리는지 그 근원을 파헤친다. 위에서 살펴본 ‘초능력이라 불린 직관의 힘’ 외에도 ‘맥락을 파악하는 멘탈 시뮬레이션의 힘’ ‘문제를 해결하는 레버리지 포인트를 포착하는 힘’ ‘사건의 흐름을 보여주는 스토리의 힘’ 등 여러 가지 힘의 근원에 대한 연구는 자연주의 의사결정론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근거를 제시한다.

이 책은 인지과학의 지평을 이성에서 직관으로 확장했다는 것 외에도 두 가지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 인적 자산의 중요성을 새로운 측면에서 역설하고 있다. 기계와 컴퓨터로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능력에 주목하고 있으며, 특히 문서와 매뉴얼로는 정확히 전달될 수 없는 암묵적 지식과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오랜 기간 특정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숙련공은 기계의 소리만 듣고도 이상 유무를 판단할 수 있다. 시스템을 믿는 대신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의 능력을 신뢰하는 것이 리스크를 감소시키고 실적을 개선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둘째, 연구방법론의 측면에서 실사구시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저자의 이름을 내건 클라인 연구소의 연구자들은 소방대원, 제트기 조종사, 간호사, 공항 수하물 검사자 등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열심히 따라다니면서 관찰하고, 회의에 참관하고, 1 대 1 심층면접을 진행하는 등 현장 중심 연구를 수행했다. 이렇게 수집된 사례들은 통제된 실험실에서 진행되는 심리테스트나 어설픈 여론조사와 달리 명쾌한 결과를 도출하기는 어렵지만 인간의 본질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복잡한 이론 부분은 다 건너뛰고 저자가 발품을 들여 쓴 52개의 사례만 읽어봐도 인간의 힘과 능력의 근원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장우석 <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기술경영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