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는 세 가지를 잘해야 한다. 남의 말을 잘 듣고, 인재를 잘 활용하고, 상벌을 분명하게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항우보다 유방이 앞섰다. 고릉 전투에서 항우에게 패한 유방은 통큰 조치를 주문하는 참모 장량의 계책을 받아들였다. 공신들인 한신, 팽월과 천하를 공유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유방은 한신을 제왕으로 봉하고 초나라 땅을 줬다. 팽월에게는 양나라를 평정한 공로를 치하해 양왕에 봉했다. 그러자 한신과 팽월은 여러 전투에서 맹활약하며 전세를 뒤집었다.

반면 항우는 공신들에 대해 분봉을 잘못하는 바람에 반란과 봉기를 초래했다. 유방보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승승장구했던 항우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신하들의 충고도 듣지 않았다. 불 같고 포악한 성격으로 참모와 부하들을 떨게 했다. 이 때문에 항우와 갈등이 생긴 신하들은 후환을 두려워한 나머지 유방에게 투항했다. 항우는 주변의 인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번번이 유방에게 빼앗겼다.

《항우 강의》는 중국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초패왕 항우를 반면교사로 승자의 조건을 분석한 책이다. 《사기》 연구의 권위자인 왕리췬 중국 허난대 교수가 CCTV의 ‘백가강단’이란 프로그램에서 강연한 내용을 글로 옮겼다. 저자는 항우가 파죽지세로 진나라를 무너뜨리고 초패왕이 된 후 몰락의 길로 접어든 과정과 배경을 상세하게 고찰한다.

항우는 전국시대 말기, 역사의 무대에 불과 7년간 등장했지만 그 어떤 인물보다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스물네 살 때인 기원전 209년, 진(秦)에 반발해 거병한 후 불과 3년 만에 초패왕에 올라 18명의 제후왕들을 봉했다. 당시 그는 패배를 몰랐던 탁월한 군사혁명가였다. 그러나 이후 4년간 한나라 유방과의 전쟁에서 패배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남긴 사면초가(四面楚歌)란 고사성어는 전장에서 심리전의 중요성을 교훈으로 전해준다. 한나라 진영에서 항우의 초나라 노래가 들려오자 그 지역이 모두 점령당한 것으로 착각한 항우는 재기의 꿈을 접고 말았다. 이는 유방의 지략이었다.

저자는 패배의 원인으로 항우 자신을 먼저 지목한다. 초한전쟁에서 항우는 인사관리에 실패했다. 결정적인 순간, 인정에 치우쳐 무능한 인사를 중용했다. 능력이 안되는 조구와 사마흔을 중용해 어렵게 얻은 성고지역을 손쉽게 내줬다. 간첩행위를 한 삼촌 항백도 단죄하지 않았다. 항백은 젊은 시절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장량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군사기밀을 알려줬다. 항우는 신하들에게 가혹했지만, 자신의 친인척에게는 관대했다. 반면 유방은 전장에서 항백을 만난 장량에게 연유를 따지고 물었다.

저자는 또 항우 주변의 권력 집단, 즉 참모진들에게도 패배의 책임을 묻는다. 범증의 계책은 여러 수 앞을 내다보지 못했다. 항우의 수하에서 유방 진영으로 떠난 한신은 항우의 몰락을 재촉했다. 팽월도 한신과 동일한 전철을 밟았다. 그러나 이들은 한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뒤 모반죄에 걸려 죽임을 당했다. 항우가 가장 신임했던 주은의 배신이야말로 항우를 사면초가에 빠뜨린 결정타였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