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0월 쓰촨으로 출장을 간 장루이민(張瑞敏) 하이얼 회장은 한 고객의 불만을 듣게 됐다. 하이얼 세탁기는 배수관이 잘 막혀 사용하기 어렵다는 것. 알고 보니 그곳 농민들은 세탁기를 이용해서 고구마나 무 등을 씻는 바람에 껍질과 흙이 배수구를 막았던 것이다. 직원들은 농민들에게 세탁기 사용법을 제대로 가르쳐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루이민의 생각은 달랐다. “고객의 어려움은 우리의 과제입니다. 고구마를 씻을 수 있는 세탁기를 만듭시다.” 6개월 후 출시된 하이얼의 고구마 세탁기는 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세계를 제패한 하이얼의 비밀》은 하이얼의 성공 비결 중 하나로 철저한 고객 만족주의를 꼽는다. 160여개 나라로 수출하는 하이얼은 1만5000개가 넘는 모델의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다. 다른 기업들이 고객 만족을 외칠 때 하이얼은 소비자 취향에 맞춘 혁신 제품을 선보였다. 2011년 발표된 중국의 브랜드가치 순위에서 하이얼그룹은 908억위안(약 16조원)으로 10년 연속 1위 자리를 지켰다. 장루이민은 세계 비즈니스계에서 높은 영향력을 지닌 사람에게 주는 ‘글로벌 엘리트 리더상’을 중국 기업인으로는 처음 수상했다.

1980년대 초반 하이얼은 파산 상태에 몰린 칭다오의 작은 국유 냉장고 공장에 불과했다. 공산당 관료였던 장루이민이 공장장으로 파견됐을 때 그를 기다리는 것은 산더미처럼 쌓인 문제뿐이었다. 직원들은 비품과 자재를 마음대로 훔쳐갔고, 공장 아무데서나 대소변을 보기도 했다. 그는 모든 것을 엄격하게 관리하겠다고 말하고 새로운 규칙을 공표했다.

하지만 직원들은 냉소했고, 다음날 물건을 박스째 들고 나가는 직원도 있었다. 장루이민은 그 직원을 바로 해고했다. 그제서야 직원들은 공장장이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반드시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생겨난 뒤 추가적으로 규칙을 만들고 이를 따르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런 방법으로 하이얼의 기업 경영은 조금씩 질서 있는 상태로 변했다. 업무 능력도 높아졌다.

장루이민은 결함이 발견된 냉장고 76대를 꺼내 임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해머로 산산조각 내버리기도 했다. 당시 냉장고 1대 가격은 800위안이었는데, 한 달에 40위안을 버는 직원들이 2년 동안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았을 때의 금액과 맞먹었다. 그는 직원들에게 “시장에는 합격한 제품만 공급하고 불합격한 제품은 나갈 수 없다”며 품질에 대한 책임을 강조했다. 품질 불량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시위였다.

위기의식 또한 하이얼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장루이민은 “지금의 하이얼과 파산 사이의 거리는 단 하루”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시장 경쟁이 너무 치열하기 때문에 어떤 기업도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하룻밤 사이에 회사가 무너지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에 잭 웰치가 있고 일본에 마쓰시다 고노스케가 있다면 중국에는 장루이민이 있다고 할 정도로 하이얼은 중국을 대표하는 경영 표본이 됐다. 하이얼은 선진국 가전제품을 모방하는 것부터 시작, 그 위에 혁신을 더해 세계 중저가 가전시장을 잠식했다. 중국 내수 시장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 무대로 나가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해 가는 하이얼의 전략은 기업들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