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3년 인수한 외환은행을 매각해 4조원이 넘는 차익을 챙긴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양도소득세를 한푼도 못내겠다며 버티고 있다. 하나금융지주가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 지분을 매입키로 한 금액의 10%(3915억원)를 국세청이 양도소득세로 원천징수하자 이를 돌려달라고 요구한 것. 론스타는 한국과 이중과세방지협정을 맺은 벨기에에 설립된 LSF-KEB홀딩스가 외환은행의 실소유주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2. 영국 최대 온라인 소매점인 아마존 영국법인은 지난 3년간 76억파운드(약 8조5000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세금은 한푼도 내지 않았다. 본사가 룩셈부르크에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마존은 매출의 대부분이 134명이 일하는 룩셈부르크에서 발생된 것으로 처리했다. 룩셈부르크보다 17배나 많은 인력이 근무하는 영국에서는 택배발송 등 주문처리를 위한 작업만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다국적 기업들은 이런 방식으로 절세, 탈세의 마법을 부린다. 이 마법을 가능하게 도와주는 것은 ‘조세 피난처’ ‘역외 시장’이다. 룩셈부르크는 조세 피난처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국가다. 《보물섬》은 역외 거래의 주무대인 조세 피난처의 실체를 한눈에 조망하는 책이다.

저자는 “‘역외 시장’은 도처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세계 무역량의 절반 이상이 서류상으로나마 역외 조세 피난처를 거친다는 것이다. 은행업에 관련된 자산도 절반 이상이 역외 시장을 거친다. 국제 은행업 및 채권 발행액의 85% 정도가 유로마켓이란 무국적의 역외 지대에서 이뤄진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0년 작은 섬나라에 있는 금융센터들의 자산계정을 합하면 18조달러에 이른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저자는 조세 피난처의 성장 과정을 연대순으로 돌아본다. 먼저 세계 주요 조세 피난처를 소개한다. 조세 피난처는 흔히 아는 대로 야자수로 둘러싸인 이국적인 섬나라가 아니라 영국과 미국 같은 패권국들이 통제하는 영향력 네트워크의 집합체라고 정의한다. 이어 여기에서 이뤄지는 역외 거래의 구조와 수법을 살피고, 역외체제의 본질을 들여다본다.

비밀금고로 유명한 유럽 전통의 역외 피난처 스위스, 현대의 역외 금융체제가 시작된 1950년대 후반 런던 유로마켓의 탄생 과정을 되짚는다. 유로마켓과 함께 영국 금융의 날개를 달아준 ‘거미줄 네트워크’를 꼼꼼히 분석한다. 뒤늦게 역외시장에 뛰어든 미국 이야기도 들려준다.

저자는 “한 조세 피난처는 다른 조세 피난처를 이용해 자금을 끊임없이 포장, 재포장하는 수법으로 출처를 감춘다”고 지적한다. 이 과정에서 검은돈이 합법적인 자금으로, 부채도 자기자본으로 둔갑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역외 금융체제는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한 채 부는 위로, 위험은 아래로 재분배할 뿐”이라며 “역외 체제가 세계의 정치, 경제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결정짓는 요인이 됐다”고 말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