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천민 민주주의
유대인이 예수에게 그랬던 것처럼 소크라테스에게 독배를 먹인 것은 그리스인이다. 민주주의를 비판하던 잔소리가 싫었던 거다. 긴축에도 반대하고(70%), 유로 탈퇴에도 반대(80%)한다는 그리스 여론조사는 당혹스럽다. 의제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민주주의가 확장되더라도 솜사탕을 몇 개 줄 것인지를 애들의 투표로 결정할 수는 없다. ‘그리스인은 거짓말쟁이라고 그리스인이 말했다는 문장의 진실 여부를 논하라’는 논리게임이 있지만 이런 모욕적 퀴즈에 ‘그리스인’이 그냥 불려 나온 것은 아니다. 지난주 어떤 독일 신문은 그리스 문화까지 싸잡아 비난했다. 아랍의 지배를 너무 오래 받았다는 인종주의적 모욕이었다. 민주주의 실패의 또다른 극단이었던 나치 독일은 또 어떤가. 슈만을 듣는 사람조차 나치의 집단 광기에 사로 잡혔다.

한국인도 그리스를 비난할 자격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한국 민주주의는 점차 쓰레기 통의 가짜 장미요, 사기꾼들의 선동으로 전락하는 중이다. 이런 통계도 있다. 2000년 한 해 동안 한국에서는 위증이 1198건, 무고가 2965건, 사기가 5만386건 일어났다. 소위 거짓말 범죄들이다. 2008년에는 사기죄가 다시 20만5140건으로 불어났다. 무고와 위증도 줄어들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사기죄가 연간 5000여건, 위증이나 무고는 10건 이하다. 위증과 무고는 대담하게도 법정에서 사기를 치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주의 결정판인 사법 민주화, 다시 말해 배심재판 따위는 원천 불가능한 나라가 한국이다. 거리와 광장을 제멋대로 점령하는 것을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는 저차원이다. 사문난적 소동이 많았던 주자학 전통에 원인이 있다면 실로 서글프다.

문제는 거짓말 증후군이 점차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강원도 태백시에서는 한동네 403명이 140억원의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집단으로 사기를 쳤었다. 똑같은 일이 경남 창원에서도 벌어졌다. 95억원의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무려 1361명이 사기에 가담했다. 가족 전부가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가짜 증명서를 만들고 ‘나이롱 환자’ 연기를 했다. 이 정도라면 집단 두뇌불량이다. 떼거리를 짓기만 하면 괜찮을 것이라는 비열한 집단의식의 발로다. 한국의 넘치는 거짓말은 이런 심리의 결정판이다. 민주주의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까지 갖게 된다.

통합진보당의 사기도 그렇다. 종북 거짓말에, 투표 거짓말에, 모조리 거짓말이었다. 좌익은 원래 거짓말 본능이 매우 강하다. 유토피아를 약속해야 하는 데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다. 민주당과 좌익 시민단체들은 광우병 집회장과 방폐장과 천성산과 강정마을에서 갖은 위증과 사기를 쳐왔다. 일반 시민들도 나을 것이 없다는 점은 우려할 만하다. MBC와 전교조 교사들에게 속았던 결과라면 자신의 머리라도 탓해야 한다. ‘그때는 몰랐다’는 것은 둘러대는 면피용 거짓말이다. 광우병 난동에 참가한 시민 중에 양심의 가책을 호소하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왜? 떼거리로 했으니까. 한·미 FTA에 반대하면서 그때는 몰랐다고 둘러댄 것은 민주당이었다. 거짓말도 잡아 떼면 그만이고, 약자인 척하면 뭐든지 용서되고, 떼거리를 짓기만 하면 좋은 저질 사회다.

오로지 대중 속에 몸을 숨기기만 하면 양심은 쓰레기 통에 박아두어도 좋다는 것이다. 정치 중독이 그만큼 심각하다. 어떤 거짓말도 정치 관련성만 입증하면 혼돈으로 몰아갈 수 있다. 나꼼수는 정치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용인되었고 김용민도 공중부양도 국회최루탄도 정치적 언어로 장식하면 수용되는 그런 천민 민주주의 국가다. 도박 승려들도 도촬이 MB정권의 음모라고 이틀만 거짓말했으면 대중을 헷갈리게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거짓 경제학으로 넘어가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땀과 노력을 말하지 않는 그 어떤 경제학도 빈 주먹으로 장미를 피워내겠다는 마술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금도 동반성장 등의 좌편향 만화경을 피워 올리는 가짜 경제학의 마술사들이 넘치고 있다. 정치인이, 권력이, 정부가, 언론과 지식인이 거짓말을 밥먹듯 한다. 거짓말에는 세 가지가 있다. 사기 치고 위증하는 그냥 거짓말, 천안함과 광우병을 선동하는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한국 민주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