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단독 인터뷰] 천광청 사건 '해결사' 고홍주 美 국무부 법률고문
중국의 시각장애 인권변호사 천광청(陳光誠). 최근 베이징에 있는 미국대사관으로 피신해 국제적인 이슈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천 변호사의 신병 처리를 놓고 중국과 미국 사이에 첨예한 외교전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낯익은 이름과 얼굴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주인공은 해럴드 홍주 고 미국 국무부 법률고문(한국이름 고홍주·57)이었다.

그는 천광청 사건에서 미·중 양국의 갈등을 원만하게 중재하는 활약상을 보였다. 부친인 고 고광림 전 미국대사와 어머니 전혜성 박사 슬하에서 태어난 그는 성공한 한국인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천광청 사건은 그의 성공스토리 가운데 한 단면이다. 한국경제신문은 14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 있는 국무부 사무실에서 고 고문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국무부 법률고문이란 무슨 일을 하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법적인 자문을 하고 있다. 매일 아침 클린턴 장관을 만난다. 국제법상 문제가 발생하면 나는 미국을 대표한다. 국제사법재판소에 미국을 대표해 출석한다.”

▷과거 장면 정부 아래에서 미국 대사로 재직하다 5·16 군사쿠데타 직후 미국으로 망명한 부친의 인생역정을 들어 천 변호사를 설득했다는데 사실인가.

“그를 설득한 게 아니라 얘기를 들려줬다. 그도 인간이고 나도 인간이다. 그는 나에게 그가 직면한 어려움을, 나는 내가 가진 경험을 그에게 얘기해줬다. 우리는 (중국의 조치를) 두고 보면서 결과(천 변호사의 미국 유학)를 기다리는 중이다.”

▷국제법을 공부하게 된 배경은.

“나는 흔히 농담 삼아 ‘물리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그렇게 될 능력이 못 됐다’고 말하곤 한다. 국제법을 공부하게 된 이유는 따로 있다.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너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인이다. 두 나라의 문화를 알고 있는 네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외교관이 된다면 서양과 아시아의 문화를 알고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는 것이고, 학자가 되면 두 나라 문화와 사회를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말씀하신 세 번째가 국제법을 공부하는 것이었다. 두 나라 문화를 알고 있는 내게 국제법을 공부하는 것은 유리했다. 아버지는 교수, 외교관, 국제법 변호사이셨고 나도 그 길을 따라가고 있다.”

▷인권에도 관심이 많은데.

[한경 단독 인터뷰] 천광청 사건 '해결사' 고홍주 美 국무부 법률고문
“부모님께서 인권운동이 한창일 때 미국에 건너오셨다. 보스턴대를 다니셨던 어머니는 대학동기인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와 잘 알고 지냈다. 아버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친구셨다. 내가 인권에 관심이 많은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게다가 인권과 법은 항상 같이 붙어다니지 않나. 법제도가 잘 갖춰져 있을수록 인권도 더 잘 보호된다. 법이 잘 정비돼 있지 않으면 인권이 유린되고, 인권을 위한 투쟁은 안정적인 법 체제 마련을 위한 투쟁이 된다.”

▷어머니는 어떤 분이신가.

“어머니는 대학교 1학년 때인 1948년 미국에 건너와 미국 시민이 되셨다. 사회학 박사 학위를 딴 사회학자로서 많은 저서와 논문을 남기셨다. 가난했기 때문에 내가 어릴 적에 내 머리를 손수 깎아주셨고 옷도 지어주셨다. 어머니는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다. 다인종인 미국 사회의 한 일원으로 어떤 일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셨다. 그리고 정말 긍정적인 분이다. 올해 82세지만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시고, 내게 항상 이메일을 보낼 만큼 활기차다. 혼자 여행도 잘 하신다. ”

▷부친은 자녀 교육을 어떻게 했나.

“항상 최선을 다하라고 말씀하셨다. 최선이라는 것은 네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고, 가장 못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고 하셨다. 남들이 말하는 기준에 만족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강조하셨다.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남들이 하는 말에 실망을 하게 된다. 아버지는 늘 네 자신의 기준에 맞춰 최선을 다하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가르침은 내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한 동기부여가 됐다. 가난했던 두 분은 자녀들에게 돈을 주시지 못했지만 교육을 주셨고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셨다. 무엇이든 자녀 교육이라면 주저하지 않으셨다.”

▷두 자녀는 어떻게 교육하는가.

“자녀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되라고 무엇을 시키는 것이 아니다. 자녀들이 무엇을 가장 잘하고 흥미로워하는지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북돋아줘 그들의 길을 찾도록 해야 한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불행이다. 아이들과 부모는 다른 사람이다. 내 아이들과는 매일 이메일로 소통하고 있다. 삶을 즐기라고 얘기해 준다. 나는 야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다시 태어난다면 훌륭한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


◆ 고홍주 고문은…빌 클린턴 정부 때 국무부 차관보 지내

고 고문은 이날 인터뷰에서 “여섯 형제자매 중 다섯 명이 하버드대, 한 명이 예일대를 나왔다. 다섯 명이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세 명은 대학학장 자리에 올랐다”고 소개했다. 그의 형인 하워드 경주 고(고경주)는 미 보건부 차관보로 일하고 있다.

1954년 미국에서 태어난 그는 하버드대에서 정부학을 전공한 뒤 로스쿨을 졸업했다. 1985년 예일대 로스쿨 교수로 합류해 2004년 로스쿨 학장에 올랐다. 민주당 소속인 그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때인 1998년 11월~2001년 1월 국무부에서 민주주의·인권·노동담당 차관보를 지냈다. 2009년 1월부터 국무부 법률고문을 맡고 있다.

그의 사무실 응접 탁자 위에는 어머니 전혜성 박사의 팔순기념 사진이 놓여 있었다. 책상 뒤에는 어머니가 직접 그린 범선 수묵화가 걸려 있었다. 고 고문은 부모님이 주신 가장 의미 있는 교육철학이 “공부는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여러 가지 관점을 터득해 가는 길”이라고 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