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미국 뉴욕의 한 진료소에선 5달러를 내면 낙태 시술을 해줬다. 진료소 앞에는 얼굴을 숄로 가린 여성들이 줄지어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하층민 여성들은 혼자서 유산을 시도하다가 후유증에 시달렸다. 새디 삭스란 여성은 스스로 낙태를 하다가 패혈증에 걸려 죽어갔다.

“어머니가 될 것인가 되지 않을 것인가를 뜻대로 선택하게 되기 전까지는 어떤 여성도 스스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다.” 뉴욕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마가렛 생어는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을 보고 산아제한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여성이 주도가 돼 임신과 출산 여부에 대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인위적 피임은 기독교 교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금기시됐다.

시대를 앞서간 이 여성은 1960년 드디어 20세기 위대한 발명품이라 손꼽히는 경구 피임약을 개발했다. 이 요술방망이 같은 발명품으로 여성은 임신과 출산에서 자유로워졌고, 사회 참여가 늘면서 전통적인 가족 구조가 변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아내 그리고 여성의 모습은 시대와 조우하며 지금껏 변화해오고 있다.

《아내의 역사》는 2000년 동안 숨어 있던 아내들의 속사정을 낱낱이 밝힌 책이다. 저자는 고대에 쓰인 성경부터 현대 여성들이 즐겨보는 잡지 코스모폴리탄까지 헤짚어가며 진솔한 아내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성경 속 아내는 남편 소유의 재산에 불과했다. 창세기 속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해 7년 동안 그녀의 집에서 봉사한다. 처녀라는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그녀의 아버지에게서 남편으로 이전하기 위해 비용을 지급하는 과정이었다.

중세시대엔 결혼이 교회의 영역에 들어갔다. 부부의 성생활은 자녀를 출산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정됐다. 지금이야 사랑없는 결혼이 이상하게 들리지만 중세시대에 결혼은 하나의 계약이었다. 여성은 자녀를 출산하고 가정을 지키는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는 사랑이 결혼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등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혼전 성관계는 금기시됐다. 결혼식장에 들어섰을 때 이미 임신 중이었던 여성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하층민이었고 여전히 중상류층 커플들은 결혼 뒤로 성관계를 미뤘다.

같은 시기 미국에서는 골드러시 바람을 타고 서부로 개척자들이 몰려들었다. 생존의 위기 속에서 모두가 성별에 관계없이 일했다. 이때부터 남녀의 전통 영역을 구분하는 이데올로기가 약해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온 게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이다. “난 모든 것에 앞서 인간이야”라고 외치는 주인공 로라는 아내와 엄마의 역할에 앞서, 개인으로서의 여성이라는 존재의 출현을 예고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아내들에게 위기인 동시에 기회로 작용했다. 생명의 위협도 있었지만, 전장으로 나간 남성들의 빈자리를 대신해 기혼 여성들이 일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조선소의 용접공, 설비공 영역까지 아내들이 차지하며 여성들은 사회로 진출했다.

그렇다면 2012년 현재 아내의 모습은 어떨까. 저자는 “요즘은 배우자의 경제적 조건을 따지더라도 반드시 남편이 아내를 먹여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내가 남편보다 돈을 많이 번다거나 이혼 시 아내가 위자료 문제로 소송을 당하는 것은 더 이상 드문일이 아니다. 그러나 과거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아내는 육아, 살림 등을 포함해 가사노동을 요구받는다.

저자는 “전통적인 아내상의 의미를 잃어버린 이 시점에 여성이 물려받은 유산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며 “과거와 현재의 기록들이 만나는 접점에서 아내의 미래상을 예측해보려 한다”고 말한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