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집단 불복…국세청 고강도 세무조사 어떻길래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국내 대표 글로벌 기업들이 무더기로 조세불복 심판 청구에 나서기로 한 것은 최근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수백~수천억원대의 대규모 세금 추징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번 불복소송 대열에서 유일하게 빠진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규모인 5000억원대의 세금을 추징당했다는 점에 비춰볼 때 다른 대기업들도 깜짝 놀랄 만한 수준의 고지서를 받아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국세청이 ‘상생’ ‘공정’ 등과 같은 정부정책 기조에 맞춰 유례가 없을 정도의 고강도 조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기업들의 불만이 고조된 것도 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1) 글로벌 기업들에 조사 집중

기업들 집단 불복…국세청 고강도 세무조사 어떻길래
세금 추징액은 국세청이 올해부터 한국 본사와 해외 자회사 간 이전거래, 특히 자회사에 대한 본사의 지급보증 수수료를 전면적으로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국세청은 본사의 수수료 산정기준이 현지 법인에 유리하도록 책정돼 결과적으로 본사의 소득을 해외법인에 넘겨주는 꼴이 됐다며 이 차액에 대한 과세를 결정했고, 기업들은 국세청의 수수료 기준이 지나치게 자의적이고 높다며 반발하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 같은 양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데 있다. 2006년 12조5000억원에 불과했던 국내 기업들의 해외 자회사 지급보증액은 2010년 34조5000억원으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지급보증 액수가 커진 만큼 수수료 수입과 이에 따른 세금 변동 가능성도 커질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게다가 국세청이 수수료 기준을 2006년 사업소득분부터 소급 적용하는 과정에서 최근 사업연도들에 대한 세금추징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기업들도 많아 기업들은 추가 추징의 부담까지 안아야 할 상황이다.

(2) 전산화로 절충 여지 줄어

올해 세무조사의 또 다른 특징은 이른바 ‘네고’가 전혀 안 된다는 것. 예년 같으면 국세청과 기업 간 밀고 당기기 끝에 적절한 수준에서 추징액을 절충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말도 꺼내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우선 기업회계 자료뿐만 아니라 국세청의 과세자료까지 모두 전산화돼 ‘재량’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것. 상호간의 투명성 증대라는 점에선 긍정적이지만 기업들 입장에선 국세청이 요구하는 과세 잣대를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불만이다.

올 들어 국세청이 깐깐한 조사와 엄격한 과세원칙을 표방하고 있는 점도 기업들을 긴장케 하고 있다. 국세청 조사국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기업들의 절세 노력을 관행적으로 인정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앞으로는 ‘소득 있는 곳에 과세 있다’는 원칙을 철저하게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3) 중견기업 오너도 타깃

대기업과 중견기업 오너(기업 소유주)들도 고강도 세무조사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국세청이 오너들의 자금거래 내역을 그 어느 때보다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국내 한 대기업 본사 사무실에 들이닥친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의 경우 해외 20여개국에 있는 주요 자회사와 본사 간 지급 보증 내용을 비롯한 각종 거래 내역을 싹쓸이하다시피 가져갔다. 오너의 친인척들이 경영하고 있는 계열·비계열 회사 리스트와 본사와의 관계, 최근 실적 및 시장 현황에 대한 자료도 추가로 요구했다. 이 기업의 한 관계자는 “과거 정기 세무조사 때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서류를 요구해 적잖이 당황했다”며 “특히 오너 일가의 해외 계좌를 통한 자금거래 자료를 요구해 조사 기간 내내 분위기가 뒤숭숭했다”고 전했다. 국세청이 기업주에 대한 조사강도를 높인 것은 대기업 중심의 ‘경제력 집중’ 논란이 거세지고 있는 사회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특히 기업 총수들과 친인척 소속 기업들 간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비판여론이 고조되면서 이들 개인과 기업들에 대한 자금 추적에 조사인력이 대거 투입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대기업들에 대한 조사는 어느 정도 마무리된 만큼 앞으로 중견기업들을 상대로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조사를 확대해나갈 방침”이라고 전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