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에 하루 세끼를 집에서 해결하는 남편을 보고 ‘간 큰 남자’라고 한다. 중년 부부들은 서로 얽매이지 않는 생활을 미덕으로 여기기도 한다. 30년을 함께해 더 이상 설렘이라고는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은 50대 후반 부부. 이들이 한 달 넘게 24시간 꼬박 같이 있으면서 800㎞ 걷기여행을 했다면 어떨까.

《산티아고 길의 소울메이트》는 LG그룹에 입사해 재무최고책임자(CFO)로 부사장까지 지낸 저자가 은퇴 후 부인과 함께한 걷기여행 일기다. 만 30년간의 직장생활을 뒤로 한 저자는 인생 2막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다. 산티아고 길 순례를 떠나자는 부인의 뜬금없는 제안에 “뭐 800㎞를 걸어? 미쳤어?”라고 반응하지만 곧 새로운 인생길을 열어줄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길에 오른다.

부부는 배낭을 둘러메고 매일 20㎞ 이상 걷는다. 아름다운 경치에 감탄하면서, 발바닥에 잡힌 물집이 터지고 몸살에 시달리는 육체적 괴로움을 감내한다. 힘들어질수록 서로를 배려하며 한발 한발 나아간다. 부부는 고통의 시간을 사랑을 굳건히 하는 소중한 기회로 만들어간다. 모든 것을 꼼꼼히 메모하는 남편 옆에서 아내는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이 책은 이처럼 한 부부의 영혼이 하나 되듯 만들어졌다.

산티아고 길에서는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했다. 국적도 다르고 모습도 다르고 참여 동기도 다르지만 모두 남에게 양보할 줄 알고 존중할 줄 아는 이들이다. 불편하고 낯선 여행 속에서 이웃의 도움을 받은 부부는 또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체험을 한다.

카미노라고 불리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이젠 한국 여행자들에게 꽤 낯익은 길이다. 매년 1000명이 넘는 한국인이 순례에 참가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올레길의 원조 격이기도 하다.

늦은 나이에 가톨릭 신앙을 갖게 된 저자는 길 위에서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 걷는 데에 따르는 고통을 치유해가는 과정에서 신앙의 참의미를 깨달아간다. 종교를 믿지 않는 이들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젊은 여행객들의 유쾌한 여행담과는 다른 중년 부부의 삶에 대한 진중한 성찰이 곳곳에 배여 있기 때문이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