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소설가, 평론가인 장석주 씨(58·사진)는 다작가다. 매년 원고지 5000매씩 쓴다. 책으로 엮은 것만 60여권이다. 올 들어서도 세 권을 냈다. ‘주역시편’이란 부제를 단 15번째 시집 《오랫동안》(문예중앙), 2001년 출간된 《추억의 속도》의 개정증보판 《고독의 권유》(다산책방) 그리고 《오늘, 명랑하거나 우울하거나》(21세기북스)다.

《오늘, 명랑하거나 우울하거나》는 장 시인이 육성으로 읽어주는 시다. 정호승, 황인숙, 심보선, 김요일, 함민복, 김영승, 배한봉, 이수명 등 시인 47명의 시를 한 편씩 꺼내 읽은 뒤 그 느낌을 자기 언어로 펼쳐보인다. 지난 5년간 한 월간지에 연재한 것을 엮었다.

‘울지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정호승의 ‘수선화에게’ 중)

장 시인은 “사람은 늘 자기 안에서 외로움이라는 체내시계가 끊이지 않고 똑딱거리는 소리를 듣는 존재”라며 이 시를 읽는다. “외로울 때야말로 내면을 성찰하고 존재의 자양분을 우주에서 취할 때라는 것을 기억하라”며 “외로움과 꿋꿋하게 마주서라”는 얘기를 건넨다.

‘사랑은 언제나 착불로 온다/(…)/꽃잎은 끊임없이/억겁의 물류창고를 빠져나가고/사월의 허공이/태초의 발송지로/반송되는 꽃잎들로 인해/부산하다’ (박후기의 ‘꽃택배’ 중)

장 시인은 “왕벚나무 아래에 서서 언젠가 저를 버리고 떠나버린 애인을, 그 아픈 사랑의 기억을 반추”하는 박후기 시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가난한 어머니가/소파수술비만 구했어도’(‘채송화’ 중)이 세상에 없었을, “그 유쾌함과 명랑성에서 슬픈 온기를 느꼈다”는 박 시인의 개인사를 그의 싯구를 인용하며 이야기해준다. 그러면서 “끝난다는 걸 알면서도 날마다 사랑을 향해 달려가 몸을 던져 오체투지하는” 구원없는 종교, 사랑에 대해 입을 연다.

이 책은 장 시인이 서문에서 말했듯 시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려 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시는 느낌의 생동이요, 영감과 상상력의 생동이다. 그런 시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눌리고 찢긴 마음을 펴고 아물게 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는 장 시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선택된 시도 시려니와 그의 속 깊은 글들이 울림을 더해준다. 《서른, 비로소 인생이 달콤해졌다》를 쓴 곽효정 씨의 사진도 잘 어울린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