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델리 남서부의 상류층 지역인 바산트쿤지. 엠비언스몰과 엠포리오몰, DFC프로미다드 등 인도 최대 규모의 쇼핑몰 3개가 이어진다. 구찌 샤넬 등 명품 브랜드숍이 즐비한 엠비언스몰 2층 모바일숍에서 아비 굽타 씨(22)와 누나인 라샤 굽타 씨(24)가 삼성 갤럭시 노트를 살펴보고 있었다. 동생 굽타 씨는 “그동안 노키아 스마트폰을 써왔는데 갤럭시 노트가 기능이 좋고 멋있다”고 말했다. 모바일숍 주인인 헤마 샤마 씨는 “이 지역은 부유층이 사는 지역이라 휴대폰 구매 고객 중 70~80%는 스마트폰을 사는 데 그 중 절반 이상이 삼성 제품을 고른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가 노키아 14년 독주를 무너뜨리고 있다. 삼성은 지난 1분기 사상 처음으로 세계 휴대폰 판매량에서 노키아를 꺾고 1위에 오른 것으로 추정된다. 고가 스마트폰에 이어 중저가 스마트폰까지 내놓으며 노키아의 앞마당이던 인도 러시아 브라질 등 신흥시장을 성공적으로 파고든 게 주요 요인으로 분석된다.

중저가 스마트폰으로 공략

시장조사회사인 SA(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는 삼성전자가 1분기 최소 8500만대 이상의 휴대폰을 판매한 것으로 추정한다. 시장조사 전문 블로그 아심코도 삼성전자 1분기 판매량을 8500만~9100만대로 추정했다. 로이터가 애널리스트의 전망치를 집계한 평균치는 8800만대다.

지난 11일 노키아는 1분기 휴대폰 판매량을 8300만대라고 밝혔다. 이를 감안하면 삼성전자가 사상 처음으로 노키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휴대폰 업체로 올라선 것으로 보인다. 노키아가 몰락했다고 하지만 지난해 휴대폰 판매량은 4억1700만대로 삼성전자(3억2740만대)보다 1억대가량 많았다.


삼성은 1분기 스마트폰 판매에서도 세계 1위에 오른 것으로 추정된다. 각종 조사에서 삼성의 스마트폰 판매량은 4000만~4500만대로 애플의 3300만대 수준을 앞선 것으로 잠정 집계되고 있다. 지금까지 휴대폰과 스마트폰 판매량 둘 다 석권한 회사는 노키아뿐이었다. 강경수 SA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가 지난해 10월 출시한 중가 스마트폰 갤럭시y가 인도 러시아 브라질 등 신흥시장을 휩쓸며 중저가 폰에서 강세를 보이던 노키아를 따라 잡았다”고 분석했다.

5년 만에 뒤집은 인도

휴대폰 사용자가 2억3000만명에 이르는 인도는 한때 노키아의 세상이었다. 노키아의 전성기였던 2007년 이 회사의 인도 시장 점유율은 70%에 육박했다. 한 달에 1000만대 가까운 노키아폰이 팔렸다. 삼성의 점유율은 5% 정도에 불과했다. 개당 1만원도 안 되는 제품부터 수십만원대까지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갖춘 노키아는 만리장성처럼 비쳐졌다.

그러나 5년뒤 전세는 뒤바뀌었다. 거의 모든 모바일숍이 ‘SAMSUNG Mobile(삼성 모바일)’이란 간판을 내걸었고, 갤럭시 노트 입간판을 상점 전면에 내세웠다.

지난해 인도 휴대폰 시장 점유율은 삼성 26.7% 대 노키아 39.8%(매출액 기준)로, 삼성이 노키아 뒤를 바짝 뒤쫓았다. 그러나 올 들어선 지난 1월 삼성은 32.9%로 노키아에 3%포인트까지 추격하더니 2월엔 34.1%로 동률을 이뤘다. 인도는 노키아 휴대폰의 30%를 만드는 거대 생산기지이며, 노키아 세계 매출의 15%가 이곳에서 이뤄진다. 그런 인도에서 삼성이 역전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는 모습이다. 고가의 스마트폰 시장에선 점유율 42.2%(1월)로 노키아(23.5%)를 압도하고 있어 올해 전체 휴대폰에서도 역전이 확실시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0년 6월 갤럭시S를 인도에 선보였다. 박병대 삼성전자 서남아총괄(전무)은 “맥도날드 등을 돌면서 체험행사를 기획했다”며 “체험인원이 700만명을 넘었다”고 말했다. 맥도날드는 한 끼 식사가 300~400원인 인도에서 3000원(130루피)가량을 받는 고급 레스트랑이다. 삼성 휴대폰의 인기에 불을 붙인 것은 지난해 9월 들여온 갤럭시 노트다. 고유의 신분제인 카스트의 영향으로 과시욕이 강한 인도인에게 화면이 큰 노트는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인도 2016년 세계 5대 스마트폰 시장

인도 시장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12억 인구 중 스마트폰 사용자가 아직 4000만명에 불과하지만, 시장은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사이버미디어에 따르면 지난해 인도의 스마트폰 판매량은 전년보다 87% 급증한 1120만대에 달했다.

인도는 2016년이면 중국 미국 브라질 등과 함께 세계 5대 스마트폰 시장(IDC 추정)이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는 인도 내 휴대폰 생산라인을 몇 배로 늘려야 할 판이지만 생산거점인 노이다 공장의 면적이 12만㎡(3만6000평)에 불과해 증설이 쉽지 않다. 이에 따라 에어컨 생산을 중단하고 그 자리를 2층으로 확장해 휴대폰 라인을 설치하고 있다.

지난해 말 월 235만대를 만들던 이 공장은 증설을 거쳐 4월부터 월 400만대 생산에 돌입한다. 스마트폰도 월 50만~70만대에서 100만대로 늘어난다. 야근을 위해 지난해부터 뽑은 직원은 모두 남자다. 여성 직원은 현지 법에 따라 오후 7시가 넘으면 귀가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삼성은 곧 초저가 스마트폰도 내놓는다. 현재 16개 모델 중 저가인 ‘갤럭시y’ 모델은 7000루피(15만원)부터 시작한다. 중국업체들이 최근 3000루피대(6만5000원) 제품을 내놓고 시장을 파고들자 대응키로 한 것이다. 반면 아이폰은 비싼 가격 탓에 점유율이 5%대에 불과하다.

델리=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