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저축은행 오너들의 패악을 보라. 이건 말이 좋아 은행이지, 서민들의 고혈을 빨아 저희들 뱃속을 채운 사기꾼 집단이 아닌가? 회장이란 인간이 수백억, 또 부회장이 수십억, 이 모든 부정을 감찰한다는 감사란 작자도 돈을 빼돌려 은행 문을 닫게 했다. 예금 5000만원까지는 정부가 대신 물어줄 것이고, 그 이상 고객들은 통째로 돈을 날리도록….”

유쾌하고 통쾌하지만 한편으론 걱정스럽다. “이렇게까지 용감해도 되는 건가”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원로 언론인 김덕중 씨가 2001년 《사람의 얼굴》에 이어 11년 만에 두 번째 책 《거꾸로 털어놓은 세상》을 냈다. 2006년 7월부터 올해 1월까지 5년7개월에 걸쳐 정치 경제 사회 분야의 핵심 이슈에 대해 매달 써놓은 글들을 역순으로 엮어 ‘명논객이 펼치는 대하 논픽션’이란 부제를 달았다.

요즘 인기 있는 TV 개그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용감한 녀석들’이란 코너는 저리 가라다. 개그맨들은 고작 프로듀서를 욕하지만 저자에겐 대통령도 예외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노랫소리가 유장하다. 한동안 동반성장이란 걸 열창하더니 요즘엔 공생발전이라는 신곡을 내놨다. 청와대 참모란 이들은 왜 이런 걸 작곡, 결국 대통령을 난처하게 만드냐”며 서민정치를 표방한다면서 물가 하나 제대로 못 잡고 사회책임 경영이니 기업생태계의 조화니 하는 우아한 가곡만 불러댄다고 지적한다. 뿐만 아니다. “부패 공화국의 활화산 줄기 하나가 또 터진 게 저축은행 사태”라며 ‘썩은 고름’을 일소하는 마지막 통치력이라도 보여달라고 주문한다.

이른바 정치교수, 즉 폴리페서들에 대한 비판에선 목소리가 유독 커진다. “폴리페서들의 암수에 걸려들지 말아야 한다. 이들은 학교와 여의도를 오가며 청춘들을 상대로 교언영색하는 게 시골장터에 나타나 바람잡던 약장수와 다름없다”며 정치교수 퇴출을 위해 대학생들에게 ‘데모’를 권하기까지 한다. 유권자들에게도 경고의 메시지를 날린다. ‘안철수 신드롬’을 지적하면서 “일개 자연과학 전공 교수를 대통령으로 만들자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그가 혼탁한 세상에 나타난 메시아로 보이는가. 혹시 그가 대권을 잡으면 나라가 온통 안철수연구소처럼 부유해질 것으로 판단하는가”라며 잔뜩 들떠 있는 유권자들을 비판한다. 물론 안철수 교수 개인사에 대한 비판은 아니다. 안 교수는 양식 있는 우수한 학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얘기다.

취업난에 신음하는 청년들에겐 ‘도전’을 주문한다. “서울대 상대출신이 왜 이런 작은 기업에 들어오려고 하나. 여기 좀 있어보고 옮기려고”라고 묻자 “소의 꼬리보다 닭 머리가 되려고 합니다”라고 답했다는 40여년 전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과 손길승 회장의 첫 만남을 소개하며 젊은이들에게 제안한다. “과감하게 중소기업의 문을 열고 들어가 그 ‘닭’들을 누렇고 덩치 큰 황소로 키워보라”고.

“나는 조선왕조 승정원 일기를 쓰듯 역사적 사건들을 깊이 있게, 또 흥미롭게 재해석해 놓으려고 애를 썼다. 행여 이미 지난 얘기들이라 재미없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면 큰 후회를 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 아닌 경고답게 책장은 쉬 넘어간다. 다소 진보주의적인가 싶으면서도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수십년간 글쓰기를 업으로 삼아온 언론인의 매끄럽고 군더더기 없는 글솜씨 감상은 덤이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