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소셜 시대엔 네트워크가 곧 권력…'디지털 원주민' 의 새로운 민주주의
2007년 미국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 살던 웹 디자이너 벤 버코비츠는 이웃집 담에 형편없게 쓰인 낙서를 봤다. 그는 이것을 지우기 위해 시청에 여러 차례 전화를 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친구와 함께 ‘시클릭픽스’란 웹사이트와 앱(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을 이듬해 선보였다. 시민들이 도로의 움푹 파인 곳, 벽의 낙서, 수명이 다한 가로등 전구 등 문제를 신고하는 기능과 관심구역을 설정하는 기능을 제공했다.

여기서 그는 정부에 단순히 불평하는 사이트가 아니라 정부의 피드백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는 사이트가 되는 데 신경썼다. 누군가 지역의 문제점을 올리면 지역 주민들과 시 당국에 이메일로 통고했다. 시 당국의 대처가 빨라졌다.

코네티컷주뿐 아니라 뉴저지주와 필라델피아주 등의 주민들도 접속하기 시작했다. 200여개 지역 뉴스 사이트들은 ‘시클릭픽스’에 자동 접속하는 기능을 탑재했다. 방송사는 매주 신고내용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추적하는 프로그램을 방송 중이다. 시클릭픽스는 호주와 아르헨티나, 캐나다 등으로도 퍼져나갔다. 6개 언어로 번역해 서비스 중이고, 3개 언어를 추가 서비스할 예정이다. 하루 조회 수는 20만건을 넘는다. 시클릭픽스는 아이폰에 탑재한 수십 만건의 앱 중 하나다. 애플의 아이폰이 성공한 가장 큰 이유는 시클릭픽스가 했던 것처럼 앱 개발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오픈 플랫폼’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넥스트 데모크라시》는 소셜 네트워크 세대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리더십을 어떻게 발휘하는지 구체적으로 소개한 지침서다. 20세기의 민주주의에서 여전히 소수가 권력을 장악했다면, 21세기 들어 ‘최초의 디지털 원주민’이란 세대가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새로운 민주주의를 열고 있다는 것이다. 가히 ‘넥스트 데모크라시’(차기 민주주의)라고 불릴 만하다.

이 체제의 주역들은 나보다 우리가 더 똑똑하다고 믿는다. 이윤보다 열정에 이끌리며 상의하달식 명령 체계를 거부하고 협업을 중시한다. 조직보다는 임무를 중심으로 뭉쳐 서로를 통제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교류한다. 네트워크 자체가 곧 권력이 되는 개방적인 민주주의가 바로 ‘넥스트 데모크라시’다.

이 책은 이들의 다르게 사고하기, 공동체 간 결속 강화, 문제 해결을 위해 자원을 공유하고 협력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개별 지도자에게 의존했던 거버넌스(공공경영) 시스템이 다수가 참여하는 형태로 바뀌는 현장도 알려준다. 허리케인 재난으로 파괴된 뉴올리언스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시민 참여가 빛났던 것도 좋은 사례다.
다수가 참여해 혁신을 가속화한 사례들도 많다. 소스 코드를 공개해 전 세계를 인재 풀로 이용한 리눅스, 누구나 인터넷에서 집필할 수 있는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이 그것이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유튜브 등은 사람들의 오프라인 생활양식까지 네트워크 중심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