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Estate] "붕어빵·성냥갑 그만!"…아파트 '개성시대'
‘인간 보관용 콘크리트 캐비닛.’

소설가 이외수가 그의 저서 ‘감성사전(感性辭典)’을 통해 내린 아파트의 정의다. 우리나라에 아파트 문화가 시작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아파트는 여전히 ‘붕어빵’ ‘성냥갑’이라는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최근에는 옆집이나 아랫집과 구조가 다른 아파트가 일반화됐다. 동일평형이라도 내부구조가 다른 여러 가지 타입을 만들어 입주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심지어 생애주기에 따라 집안 내부를 마음대로 뜯어고칠 수 있는 아파트 공급도 본격화되고 있다. 벽이 아니라 기둥이 건물 하중을 견디는 구조의 아파트가 보급되면서 내부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게 됐다. 59㎡ 85㎡ 114㎡ 등으로 획일화된 크기도 다양해지고 있다.

단지마다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이 들어서고, 조경도 차별화되고 있다. 김승배 피데스개발 사장은 “아파트는 에너지 효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바쁜 한국인에 가장 적합한 주거형태”라며 “내부구조나 편의시설도 입주민의 개성과 취향을 반영할 수 있도록 변하고 있어 앞으로도 인기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양해진 구조

대우건설이 최근 송도국제도시에서 분양한 주상복합아파트 ‘송도 아트윈 푸르지오’는 일부 가구의 실내 공간에 계단을 설치, 청약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부엌이나 방에서 거실로 이동하려면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이른바 1.5층 구조다. ‘층단형 특화 설계’(사진)를 통해 가구 내부의 높낮이를 차등화한 것이다. 거실에서 천장까지 층고는 3m에 이른다. 통상 2.3~2.4m 안팎인 일반 아파트에 비해 탁 트인 개방감을 느낄 수 있다.

요즘 모델하우스를 방문해 보면 이처럼 차별화된 설계가 적용된 아파트가 적지 않다. 건설사마다 비슷한 구조와 인테리어를 적용하는 공급자 주도의 상품이라는 인식을 탈피하기 위한 경쟁이 한창이다. 대형건설사인 A사 관계자는 “주거 문화가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차별화된 상품을 내놓지 않으면 도태되는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전통적인 3~4인 가구가 줄고 1~2인 가구가 크게 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변화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보다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담아내지 않으면 수요자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어서다.

올해 초 2인 가족을 위한 맞춤형 평면을 내놓은 GS건설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는 자녀가 분가한 부부를 대상으로 한 ‘퍼블릭 평면’과 맞벌이 부부를 위한 ‘프라이빗 공간 중심형 평면’ 등 2개의 특화 평면을 개발, 디자인 저작권 등록을 마쳤다. 이들 평면은 실내에 기둥식 구조를 일부 도입, 공간 활용성을 높인 게 특징이다. GS건설은 이번에 개발한 2인 가구 특화 평면을 오는 하반기 경기도 화성 동탄2신도시에서 분양 예정인 ‘동탄자이’에 적용할 계획이다.

한화건설도 최근 1~2인 가구 전용 소형주택에 적용할 ‘스마트 셀’ ‘스마트 핏’이라는 이름의 평면을 개발, 저작권을 등록했다. 욕실과 주방이 차지하는 면적을 최소화하고 다른 공간을 대폭 늘린 것이 특징이다. 장혁 한화건설 홍보팀 차장은 “실내공간을 같은 규모의 다른 아파트에 비해 20%는 더 넓게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Real Estate] "붕어빵·성냥갑 그만!"…아파트 '개성시대'
◆획일적 평형 구성은 가라

서울시 산하 SH공사도 59㎡ 85㎡ 114㎡ 등으로 획일화된 장기전세주택(시프트) 평형을 인구구조 변화와 입주자들의 거주형태, 취향에 따라 세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물산 등 대형건설사들은 이미 평형을 다양하게 구성한 아파트를 분양하기 시작했다.

수익형 부동산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아파트 크기를 줄이거나, 가구 내부를 쪼개 두 가족이 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평면 다양화에 대한 개발 경쟁도 잇따르고 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투 인 원(2 in 1)’ 주택을 공급할 계획이다. 이른바 쌍둥이 주택으로 한 집에 두 가구가 거주할 수 있다. 오는 5월 강남 보금자리주택단지에 들어설 ‘도시형 생활주택’에 선보이기로 했다.

주택시장에서 불고 있는 이 같은 변화의 바람은 관련 법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곳은 서울시다.

서울시는 지난 40년간 대한민국 아파트의 표준으로 쓰인 ‘국민주택규모(전용 85㎡)’를 수정, 65㎡(20평)로 축소하는 방안을 최근 국토해양부에 건의했다. 평균 가구원 수도 국민주택규모가 정해질 무렵인 1973년의 5.09명에서 지난해 2.78명으로 줄어든 현실을 반영하자는 취지다.

주로 아파트 건설에 응용되는 국민주택규모는 주택정책과 세제, 청약제도 등에 영향을 미치는 기준점 역할을 하고 있어 변경될 경우 주택시장에 상당한 파급 효과를 불러올 전망이다.

서울시는 앞서 작년 하반기부터 한 주택의 일부 공간 출입구를 별도로 설치, 세(貰)를 놓을 수 있는 ‘부분임대’ 평면을 도입하기도 했다.

◆커뮤니티 시설의 진화

평면과 평형뿐 아니라 아파트 단지를 구성하는 조경 커뮤니티시설 등 공용 공간도 끝없는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일부 고급 주상복합아파트에서 선보였던 피트니스센터, 골프연습장, 수영장, 독서실 등이 들어서는 커뮤니티센터가 일반 아파트로 빠르게 확산되는 추세다. 준주거상품인 오피스텔이나 도시형 생활주택까지 커뮤니티센터가 들어서는 곳이 등장할 정도다.

코오롱건설이 울산 신정동에 지은 주상복합아파트 파크폴리스 1층 로비에는 연구소나 산후조리원 등에서나 볼 수 있는 ‘에어샤워실’이 갖춰져 있다. 공장이 많은 지역 특성을 고려, 먼지를 털어내기 위해 설치했다. 이곳에는 50여석 규모의 작은 극장도 마련돼 있다.

힐스테이트(현대건설), 래미안(삼성물산 건설부문), 자이(GS건설), e-편한세상(대림산업), 꿈에그린(한화건설)…. 어느새 익숙해진 아파트 브랜드는 언뜻 똑같아 보이는 아파트 같지만 ‘우린 다르다’고 항변하는 무언의 시위이기도 하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