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이후 미국인들은 또 다른 테러 공포에 몸을 떨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생존 자체가 위기에 처했다며 이슬람 세계를 정조준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서방 세계 전체가 존재를 위협하는 실제적인 위험에 직면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포는 증폭됐고, 보통사람들의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사람들은 장거리 이동에도 비행기 대신 승용차를 택해 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더 안전하게 됐을까. 결론은 “아니다”. 9·11 테러 희생자 수의 절반이 넘는 1595명이 자동차를 택했다가 사망했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9·11 테러 희생자 수 또한 미국에서 일상적인 범죄에 희생된 사람 수의 5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왜 공포는 늘 증폭되며, 사람들은 더 큰 두려움에 휩싸여 헤매게 되는 것일까. 《이유 없는 두려움》은 이런 ‘두려움의 문화’에 대한 고찰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어떻게 위험을 인식하는지 설명하고, 두려움을 일으키는 심리적 기제를 들여다본다.

저자는 인류가 지금처럼 안전하게 삶을 영위한 때도 없었다고 말한다. 노벨상을 받은 로버트 포겔 시카고대 교수도 “인류 역사를 통틀어 지금껏 이 지구 위에 살았던 7000여 세대 중 어느 세대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진기한 진화 양상”을 보인다고 했다. 그렇다면 느긋하게 삶을 즐길 줄 알아야 하는데 실상은 정반대다. 전혀 느긋하지 않다. 늘 두려움에 떤다. 무언가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이유 없는 두려움’에 전율한다.

두려움은 개인과 사회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감정일 수 있다. 위험을 두려워하면 위험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합리적인 조치를 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유 없는 두려움은 성질이 다르다. 위험에 직면해 내리는 결정이 갈수록 어리석어지는 까닭도 이 이유 없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저자는 “두뇌는 전적으로 구석기 시대의 산물”이라며 “태곳적 두려움이 현대인의 이성을 지배한다”고 말한다. 현대인의 생활양식에 익숙할 리 없는 원시인의 뇌가 TV 등을 통해 좋지 않은 소식을 접하면 마치 짐승에게 공격을 받은 듯 반응한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무의식 세계에 도사리고 있던 두려움이 수면으로 떠오르는 과정을 추적한다.

쉽게 얻을 수 있는 기준점을 바탕으로 해답을 찾는 ‘앵커링 효과’로 인한 착각이 치명적인 판단오류를 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초기에 머릿속에 ‘닻을 내려’ 설정한 정보에 의해 나중에 내리는 결정이 좌우된다는 것. 독일 심리학자 스트랙과 무스바일러가 2006년 발표한 실험 결과는 판사들도 이 앵커링의 덫을 피해가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간범 재판을 맡은 판사들이 쉬는 시간에 기자들이 전화를 걸어 “형량이 3년 이하냐”고 물은 경우 판사들은 평균 33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기자들이 다른 판사들에게 “형량이 1년 이하냐”고 묻자 판사들이 내린 형량은 평균 25개월로 뚝 떨어졌다. 앵커링 효과 외에 판단오류를 일으키는 전형성의 법칙, 호오(好惡)의 법칙, 사례의 법칙, 집단극화현상 등도 연구결과를 펼쳐보이며 설명한다.

저자는 두려움이 늘어나는 현상은 원시적인 뇌의 작용 외에도 여러 요인이 있다고 말한다. ‘두려움 장사’가 그중 하나다. 정치인이나 사회운동가 등은 여러 가지 두려움을 일으켜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 날마다 정교하게 계산해 만든 메시지를 퍼부어대며 두려움을 조장한다. 왜곡된 수치, 비합리적인 결론까지 끌어들이며 이야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을 파고든다. 대중매체는 그 중요한 수단이다.

저자는 두뇌, 대중매체, 두려움을 부채질해서 이득을 얻는 개인과 조직이란 세 요소가 하나로 이어지면서 ‘두려움 회로’가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두려움을 증폭시킨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이유 없는 두려움은 현대사회의 필연적인 현상”이라면서도 “이를 악물고 이성의 명령을 따르면 그 정도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