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청춘이 아프다고? 40대들은 아플 수도 없다는 걸 아니?
젊을 때는 ‘박 터지게’ 공부했다. 직장에서도 죽어라 일했다. 적게 쓰고 열심히 버는데도 빚은 늘어간다. 치솟는 물가, 감당하기 어려운 자녀 교육비로 삶은 갈수록 팍팍하다. 내집 마련의 꿈은 노예의 꿈(하우스 푸어)으로 바뀌었다. 언제 직장을 그만둬야 할지 알 수 없다. 아침부터 밤까지 온 힘을 다해도 마음 한구석은 늘 불안하고 소외감을 느낀다. 몸에서는 이상신호가 나타나지만 아플 수도 없다. 대한민국 40대의 슬픈 자화상이다.

[책마을] 청춘이 아프다고? 40대들은 아플 수도 없다는 걸 아니?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는 아파도 아플 수가 없는, 청춘보다 더 아픈 이 땅의 40대에게 전하는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다. ‘나는 그대로인데…, 세상이 나에게 마흔이라 말한다’ ‘흔들리지 않는 나이는 없다’ ‘비록 힘들어도…, 다시 시작하니까 마흔인 거다’ ‘내 인생의 행복발전소, 가족’ 등 4부로 나눠 40대가 겪는 애환과 아픔, 슬픔과 격동, 회한과 아쉬움을 15개의 스토리와 메시지로 풀어낸다.

남성사회문화연구소장인 저자는 그동안 만난 사람들의 절절한 사연들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세월이 바꿔 놓은 동창들의 이야기, 치열한 직장생활의 애환, 평생을 바쳐 장만한 집이 오히려 폭탄이 된 사연, 사업의 고단함, 가슴 찡한 부부의 사랑 등 스토리는 특별하지는 않다.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가슴에 와닿고 더욱 큰 울림을 준다. 저자는 각각의 스토리가 주는 의미를 재해석해 마흔이 나아가야 할 삶의 방향을 조목조목 들려준다.

20년 만의 동창회. 학창시절에는 별볼일 없던 친구들이 고급차를 몰고 왔다. 평생 치열하게 살았는데 내 모습은 초라하기만 하다. 계속되는 사업, 주식, 부동산, 골프 이야기에 급기야 입을 꾹 다물고 만다. 앞으로 자주 만나자는 공허한 인사. 무엇이 우릴 갈라놓았을까. 저자는 자기 고백적인 솔직한 문체로 스토리를 써내려간 뒤 ‘힘든 길일수록 함께 걷는 이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마음을 지켜줄 ‘친구 같은 배우자’와 망설임 없이 힘든 마음을 열어보일 수 있는 ‘배우자 같은 친구’가 있으면 인생이 한결 즐거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직장생활에는 ‘정글의 법칙’이 적용된다. 줄을 잘못 서면 능력과 상관없이 출세의 길이 막힌다. 소모품과 필수품은 한 끗 차이다. 빨라진 은퇴와 길어진 수명, 정년을 보장하지 않는 기업문화 등으로 40대의 불안감은 커져만 간다. 자아실현이라는 일의 신성한 의미는 퇴색된 지 오래. 생계를 위해 쉬는 날에도 구두끈을 매야 한다.

저자는 “마흔이라는 소모품도 쓰임새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고 말한다. 다른 것은 흉내낼 수 있어도 경험만큼은 복제가 어렵다는 것. 달라져야 정글에서 살아남는다고 충고한다. ‘결국, 나의 천적은 나였던 거다.’ 저자는 조병화 시인의 한줄로 된 짧은 시 ‘천적(天敵)’을 인용하며 “인생 최대의 적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라고 말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나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불성실한 태도, 스스로를 무기력하고 실패한 인생으로 정의하는 것이 가장 큰 적이라고 강조한다.

평생을 바쳐 이룬 ‘내 집 마련’의 꿈은 일장춘몽이 돼버렸다. 은행에 저당잡힌 내 인생의 빈집이었을 뿐이다. 진정한 내 집이 되려면 앞으로도 족히 10년 이상 죽어라 일하며 안 먹고 안 써야 한다. 한방을 노리고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끌어 모아 주식에 투자해보지만 그 역시 일장춘몽일 뿐. 빚만 늘었을 뿐이다. 돈 없이 평균수명 100세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저자는 마흔 이후 재정 준비는 생활방식과 돈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가장 중요한 건 지출을 조절하는 것이다. 건강관리보다 중요한 재정계획도 없다고 말한다. 건강하면 의료비 지출도 줄어들고, 건강해야 지속적인 수입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한다.

그동안 바친 헌신에 대한 보답을 해줄 수 있는 곳은 가정이라고 강조한다. 방전된 건전지처럼 살아온 인생이 가족을 통해서만 충전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행복한 부부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자아를 인정하고 무조건 받아들이라고 조언한다. 또 마음과 몸으로 가족을 사랑하고 돌보라고 충고한다.

평범한 사례 속에서 길어올린 메시지는 한 편의 수필처럼 가볍게 읽히면서도 진한 공감을 자아낸다. 키워드는 희망이다. 저자는 비록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마흔의 어깨를 짓누르지만, 아직도 청춘의 푸른 피가 흐르고, 진정한 의미의 도전이 가능한 마흔이기에 힘들어도 꿋꿋하게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을 주문한다.

“지금껏 힘겹게 살아왔으므로 앞으로도 힘들 것이라고 지레 좌절하거나 자포자기하지 마라. 비록 우리의 지난 삶이 보잘것없었을지라도, 다 괜찮다. 우리는 멋진 마흔이지 않은가. 우리는 자랑스러운 마흔이지 않은가. 실패를 딛고 일어선 마흔이지 않은가. 아파하지 마라. 그대의 인생은 바로 그대 것이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