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정책 착오 줄인 지도부 카리스마…중국식 시장경제가 大國 일군다
중국 남부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은 대부분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에 부딪혔다. 이때 중국 정부는 외국 기업들이 노동자들의 요구를 예측해 임금을 조금씩 올려주거나 노동 조건을 개선하도록 조심스럽게 압박했다. 광저우에서 사업을 하는 한 프랑스인은 이렇게 말했다. “지방정부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시끄러워지지 않게 일을 해결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더군요.”

노사분규가 일어나면 지방정부는 국내 기업, 외국 기업을 가리지 않고 사건을 원만하게 처리하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권력은 결국 인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진리를 알고 있는 중국 공산당은 인민들의 기본적인 요구를 적극 수용하려고 노력한다.

공산당은 정치적으로도 민심의 변화를 주시하고 장기적인 대비를 하고 있다. 원자바오 총리를 위시한 체제 내 자유파들은 이제 정치개혁을 시작할 때가 됐다고 주장한다. 정치개혁의 세 가지 목표는 당내에서 선출직을 늘리고,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며, 법치를 강화하는 것이다.

《중국을 읽다》는 프랑스 저널리스트가 중국이 실험하고 있는 ‘사회주의적 시장경제’ 체제를 파헤친 책이다. 지난 30년간 중국에 체류하면서 저자가 목격한 170가지 굵직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전개했다. 개혁·개방을 진행하는 동안 중국인의 기대와 불안, 대형 사건이 터졌을 때 대륙에서 일어났던 다양한 모습을 입체적으로 그렸다.

경제 규모 세계 2위, 외환보유액 세계 1위,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 세계 2위 등 놀라운 경제 성과를 이룬 주역은 ‘지도부의 카리스마’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공산당이 직접 선출한 지도부는 아니지만 일관성 있는 정책으로 시행착오를 줄이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 특유의 집단지도체제에서 비롯한다. 덩샤오핑은 1970년대 말부터 혁명원로들과 함께 지도부 구성 방식을 고민했다. 지도부 내에서 늘 보수파와 개혁파가 대립했던 것을 떠올리며 국가주석은 보수파, 총리는 개혁파라는 소위 ‘중국식 동거 정부’를 구상했다. 여기에 체제 내 각 파벌을 대표하는 7명의 수뇌부가 존재한다. 이는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것을 막는다.

후진타오를 차세대 지도자로 키웠던 지도부의 전략도 소개한다. 지도부는 지방 관리였던 후진타오에게 까다로운 티베트 독립 운동 사건을 맡겼고, 그가 엄중하게 이를 진압하자 중앙 정치무대로 끌어올렸다.

중국식 시장경제를 어떻게 고수하는지도 설명한다. 개혁은 늘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개방의 폭도 수용 범위를 절대 넘지 않는다. 금융 통화 부문에서도 미국의 위안화 절상 압박을 견뎌내며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때 성장률 9%를 지켰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는 외교술도 적었다. 중국은 아프리카와 제3국가에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사회간접자본(SOC) 사업권과 천연자원 개발권을 확보한다. 국제사회에서 무력 확장이 아닌 경제·무역 네트워크를 형성해 인근 국가들이 중국을 강대국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