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왕따 되는 거 어렵지 않~아요"
은행 창구 직원인 정모씨는 최근 매스컴에서 ‘왕따’라는 표현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남의 일 같지 않아서다. 일할 때는 이것 저것 시키던 상사들도 회식이나 식사 자리에서는 말을 잘 섞으려 하지 않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솔직히 제가 외모에는 별 자신이 없는데 그 때문에 ‘왕따 놓는 건가’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다고 정색하고 물어볼 수도 없어 답답하다”고 털어놨다.

왕따는 학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김과장 이대리들의 직장에도 왕따는 존재한다. 학교 왕따처럼 직접적인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남들로부터 소외당하는 것은 여간한 정신적 고통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왕따 당하는 사람들 중에는 무능, 이기적 성향, 교만한 태도 등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동료들을 배척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 필요도 있다. 직장 왕따의 유형을 정리해 본다.

◆직장 왕따에는 위 아래 없다

[金과장 & 李대리] "왕따 되는 거 어렵지 않~아요"
직장 내에서는 상사도 왕따의 대상이 된다. 상대적으로 약한 학생이 주로 따돌림의 대상이 되는 학교 왕따와 가장 크게 다른 부분이다. 이 경우에는 왕따의 대상인 상사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별명이 따라 붙는다.

소비재 기업의 재무팀장인 오 차장은 팀원들 사이에서 ‘따도남’으로 불린다. ‘따뜻한 도시 남자’가 아니라 ‘따 당하는 도덕적인 남자’라는 뜻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오 차장은 술·담배를 하지 않는데 커다란 자부심을 갖고 있다. 직원들에게도 틈나는 대로 청교도적인 생활을 권장한다. 자연히 팀에 회식자리가 사라졌고, 결국 팀원들은 오 차장을 빼고 술자리를 갖는다. 몇 달 전에는 사업부 임원이 마련한 회식자리에서도 오 팀장이 술의 해악에 대해 일장 ‘복음’을 전파하다 해당 임원이 짜증을 내면서 판이 깨졌다. 이후 이 임원은 팀원들을 데리고 회식을 나갈 때면 “오 팀장은 일찍 들어가도 돼”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철강 회사에 근무하는 우 과장은 부하 직원들 사이에서 ‘같이 밥먹기 싫은 상사’ 1순위로 지목된다. 탕수육이나 팔보채 등 덜어서 나눠먹는 음식이 나오면 우 과장은 허겁지겁 상당량을 혼자 먹어치운다. 다른 직원들이 이제 배를 채우려고 하면 “일본의 어느 기업 얘기를 보니까 밥 빨리 먹는 사람이 일도 잘한대”라며 담배를 피워 물고 눈치를 준다. 하지만 실제 업무에서 우 과장은 무능하고, 열정도 없는 ‘고문관’으로 통한다. 후배들이 그에게 붙인 별명은 ‘간장게장’이다. 실제 간장게장이 밥도둑이라면 우 과장은 봉급도둑이라는 비아냥이 섞여 있다. 후배들은 우 과장과의 식사를 가능한 피하는 한편 혹시 같이 먹게 되더라도 도시락 정식이나 순대국 같이 따로 먹는 메뉴를 고른다.

IT기업 마케팅팀장인 이 차장의 별명은 로맨티시스트다. 낭만주의자가 아니라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중성 때문이다. 부하직원이 의견을 나타내면 ‘싸가지’가 없는 것이고, 본인이 고집을 부리면 ‘심지가 굳은 것’이다. 재무팀과 공동 업무가 많은 부하직원이 재무 관련 도서를 구입하겠다고 하면 “개인적인 자기 계발비용이니 팀비 처리를 못하겠다”고 하면서도 본인의 골프레슨 DVD는 ‘접대역량 강화’라는 명목으로 부서비에서 빼 쓴다. 부하직원들은 “로맨티시스트만 보면 식욕이 떨어진다”며 점심 시간이 되면 “약속 있다”고 따로따로 나간 뒤 회사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식당에서 헤쳐 모인다.

◆원형 탈모에 거식증까지

학교처럼 직접적인 폭력은 아니더라도 직장 왕따의 설움도 결코 덜하지 않다. 오히려 성숙한 성인들 사이의 따돌림은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남긴다.

최모씨는 2년 전 한 중견 섬유업체에 취직했다. 계속된 구직생활 끝에 30세가 넘어서야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됐다는 기쁨도 잠시. 20대 중후반인 팀 동료들 사이에서 겉돌기 시작했다. 성격이 소심해 먼저 다가가지도 못했다. 은근히 시작된 따돌림은 대놓고 큰 소리로 구박하는 단계로 발전했고 팀장을 제외한 팀원 6명 모두가 그를 함부로 대했다. 최씨는 “제가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전화가 와도 일부러 아무도 안 받다가 일 끝나면 ‘전화도 못 받냐’고 소리를 지른다”며 “퇴근하려고 하는데 내일 아침에 보고하라고 새로 일을 시킬 때면 울컥하는 마음이 드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고 털어놨다. 업무와 관계 없는 부분에서도 인신공격을 당한 최씨는 스트레스로 입술에 물집이 잡히고 원형탈모까지 생겼다. 마케터가 꿈이던 그는 결국 적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생산 관리 분야를 지원해 부서를 옮겼다.

3년차 직장인인 권모씨는 최근 자주 가는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광화문 근처에서 같이 밥 먹을 사람을 구하는 내용이었다. 직장에서 왕따를 당하며 점심 시간에는 같이 밥 먹을 사람도 구하지 못하다 보니 온라인에서 ‘밥 동무’를 구하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 “남들이 뭐라 하던 개의치 않고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점심 시간에 밥 먹으러 갈 사람이 없어 혼자 있으면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밥맛도 없어 점심을 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남들에 비해 튀는 사람들은 시기의 대상이 되기 쉽다. 미국 명문대 MBA 출신인 윤 대리는 회사에서 촉망받는 인재다. 업무에 대한 열의도 높은 데다 두뇌 회전도 빨라 상사가 시키는 일을 척척 해낸다. 하지만 문제는 너무 잘난 체한다는 것. 일이 떨어질 때마다 “나 아니면 못한다”고 대놓고 말하고 다녀 동료 직원들의 등을 돌리게 한다. 물론 윤 대리를 ‘오른팔’같이 아끼는 직속상사 천 상무만은 예외다. 식사하러 갈 때도, 사우나 갈 때도 윤 대리 옆에는 천 상무밖에 없다.

여성들 사이에서는 미모가 왕따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모 신발 제조 공장에는 생산원 50명 중 48명이 20대 미혼 여성이다. 유부남인 부장을 빼면 생산기사 손 과장이 ‘청일점’ 이다. 손 과장은 잘생긴 외모는 아니지만 배려심이 좋아 여직원들 사이에 인기가 좋다. 그를 놓고 여직원들 사이에 ‘쟁탈전’이 벌어지는 사이 나이도 어리고 얼굴도 예쁘장한 김모 사원이 왕따가 됐다. 손 과장이 유독 말을 많이 건네고 친한 척을 한 것이 화근. 여성 생산원 모임이나 회식, 출퇴근길에도 철저히 왕따를 당한다. 김씨가 이런 사실을 손 과장에게 하소연한 것까지 소문이 나면서, 김씨는 공장에서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않고 보낼 때가 많다.

노경목/윤성민/윤정현/강경민/강영연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