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국제 통상 전문가가 들려주는 WTO 협상 막전막후
중국에서 배추를 수입해 김포에서 만든 김치는 한국산일까 중국산일까. 브라질 커피콩을 여럿 수입해 볶고, 이를 섞어 만든 커피 제품의 원산지는 어느 나라일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처럼 양자 간, 지역 간 FTA가 확산되면서 자그디시 바그와티 컬럼비아대 교수가 말한 ‘스파게티 접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300여개를 헤아리는 FTA마다 제각각인 무역 규칙 탓에 기업들이 FTA 최대 이점인 관세 인하 효과를 모두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서로 다른 원산지 규정과 통관 절차가 거래비용을 늘리는 전형적인 장애물이다. 특히 원산지 규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 비용은 수출 가격의 15%나 된다고 한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좀 더 자유로운 무역을 위해 원산지 규정의 통일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업무를 하는 원산지위원회의 선임참사관으로 협상을 조율하고 있는 이가 한국인 김의기 씨(58)다.

《국제통상 전문가 김의기 WTO에서 답하다》는 김씨의 국제기구 생생 체험담이다. 김씨는 국제기구 진출 1세대다. WTO 본부가 있는 제네바의 한국대표부 재무관보로 일한 그는 세계관세기구(WCO)에서 3년, WTO에서 17년 등 20여년간 국제기구에서 활약했다. 세계가 인정하는 원산지 규정 전문가이며 관세평가 전문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그의 WTO 경험담은 한 편의 영화처럼 흥미진진하다. 원산지 규정을 자국에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각국 협상 대표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때론 거짓말도 불사하는 치열한 두뇌싸움의 열기로 가득한 회의장 분위기까지 고스란히 느껴진다. 원산지 규정이 어떻게 합의에 이르게 되고, 그 규정은 우리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짚어준다.

세계 무대를 꿈꾸는 젊은이들에 대한 조언이 유용하다. WTO 사람들을 통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인재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세계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어떤 소양을 갖춰야 하는지 조언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기 위한 노력은 처절하다. 그는 “WTO에서 일하면서 가장 큰 문제가 된 것은 영어”라며 “17년 동안 한번도 편히 누워 자본 일이 없다”고 했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