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정부가 시시콜콜 간섭하면 시장경제 '파이'만 작아진다
[책마을] 정부가 시시콜콜 간섭하면 시장경제 '파이'만 작아진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 · 1881~1973)는 오늘날까지 오스트리아 학파의 명맥을 이어오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학자다. 빈대학에서 가르쳤으며,독일 전체주의 정권의 힘이 강해지자 1940년 미국으로 이주,뉴욕대학에서 가르치면서 신 오스트리아학파의 중심적 학자들을 많이 길러냈다.

미제스는 활동 면에서뿐만 아니라 경제이론 면에서도 큰 영향을 줬다. 노벨상 수상자인 하이에크의 경기변동론도 인위적으로 통화량을 증가시키면 잘못된 투자를 하게 돼 일시적으로 경기가 좋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다시 불황이 생기게 된다는 미제스의 초기 업적에서 나온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또 불확실성을 타개하는 기업가 역할의 중요성,그리고 가격계산 불가능 때문에 사회주의는 결국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견 등은 그의 혁신적 기여라고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미제스의 이론을 가장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저작이 바로 이번에 민경국 강원대 교수와 박종운 씨에 의해 번역된 《인간행동(Human Action,제4판,1996)》이란 책이다.

사실 이 책은 10여년 전에 《인간행위의 경제학》이란 제목으로 한번 번역된 적이 있는데,한문투의 번역체 때문인지 아니면 당시 우리나라에서 오스트리아 학파에 대한 이해가 적었기 때문인지 큰 주목을 받지 못한 것으로 기억된다.

이번에 새롭게 번역된 책의 역자 후기를 읽어보면 이 책을 번역한 번역자들의 동기는 다분히 정책적인 면이 강하게 보인다. 즉 정책 당국자나 일반인이나 시장경제의 진정한 작동방식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간섭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는 것에 대해 경고하는 의미에서 이 책을 번역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동기는 충분히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이 책의 의의는 정책적인 것 이외에 사회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에 대해 기본적 시각을 제공해주는 데 있으므로,이 문제를 좀 더 생각해봐야 하겠다. 특히 최근 10여년간 경제학에서 심리학의 인간행동 탐구를 이어받아 경제를 설명하려는 행태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 등장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미제스의 접근법을 평가해보려고 한다.

미제스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가진 지식을 최대한 활용,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을 찾는다는 점에서 계산된 행동을 하는 존재다. 이런 점에서 인간의 선택은 합리적이다. 다만 인간은 사회 전체를 파악하거나 충분한 정보를 갖지 못하고,자신이 생각하기에 최선인 선택을 한다는 점에서 그 선택은 지극히 주관적이며,그것이 맞는가를 알기 위해 가격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장이라는 선별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미제스의 설명은 외형상 기존의 경제이론과 비슷하다. 그러나 미제스의 접근법은 두 가지 점에서 차별화된다. 그 하나는 인간행동을 파악하는 방법이다. 미제스는 이런 인간행동은 역사적인 자료를 관찰해서도 드러나는 것이 아니며,추상적인 가정을 통해 논리적으로 추론해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면 과연 그가 어떻게 인간행동을 파악하려고 하는지 뚜렷이 알기는 힘들지만,인간행동이란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특정 유형으로 나타나며 그 동기를 내면적 성찰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다른 하나는 인간 선택 행동을 강조하므로 규범과 관습적 행위와 같이 계산을 동반하지 않는 경우나 선택 외에 다른 의사소통 방식,예를 들면 목소리에 의한 소통 방식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거나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인간관은 결국 시장 방식 외의 다른 방식을 비판하는 근거가 된다.

[책마을] 정부가 시시콜콜 간섭하면 시장경제 '파이'만 작아진다
미제스의 인간행동 설명은 현대 행태경제학의 기준으로 보면 타당한가. 그 답은 절반의 성공으로 보인다. 인간의 선택을 주관적으로 본 점,그럼에도 시장경제가 성공한 것을 진화론적 시각에서 분업의 결과로 보려고 한 점 등은 성공적이다. 그러나 목적을 달성하려는 수단적 선택을 인간행동의 기본이라고 하는 것은 편협한 인간이해라고 할 수 있다. 인간행동은 간단한 여러 사고 방법들과 편견들에 의해 유도된 결과지만 크게 불합리하지는 않다는 정도로 요약되는 행태경제학의 관찰과 미제스의 인간행동 설명 사이에는 상당한 간격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척박한 반지성적 풍토에 비춰보면 《인간행동》은 우리에게 창의적 생각을 위한 좋은 계기를 준다는 점에서 권할 만한 책이다.

홍기현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